디도서 1:5~6,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 1
5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6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바울은 디도에게 5절을 보면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남은 일을 정리하는 것’과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남은 일이 다른 일이 아니라 장로들을 세우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서 ‘장로’(πρεσβυτέρους)라는 단어는 ‘elder’라는 번역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말 그대로 나이가 많은 ‘어른’으로 공동체 안에서 어떤 ‘위엄과 지위’가 있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그리고 장로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게 7절부터는 ‘감독’(ἐπίσκοπον)이라고 말합니다. 감독은 장로와 본질적인 의미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단어의 뜻은 ‘overseer ruler, supervisor’라는 의미로 ‘기능과 역할’에 강조점을 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같은 단어의 차이로 인해 개신교 교단 중에는 ‘장로’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장로교’(Persbyterian Church)가 생겨났고, ‘감독’이라는 명칭을 강조하는 ‘Episcopal Church(성공회)’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공회를 개혁하려는 과정에서 생겨난 ‘감리회(교)’도 원래의 뜻은 ‘감독이 치리하는 교회’(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입니다. 그러니까 현재 생겨난 개신교회들의 교회 조직에 관한 성경적 근거와 뿌리가 오늘 본문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성공회’라는 명칭은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영국 성공회’(Anglican Church)이고 다른 하나는 ‘Episcopal Church’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영국 성공회, 잉글랜드 성공회’(The Church of England)로 시작되었는데 역사적인 상황과 맞물려서 스코틀랜드에서 성공회 신앙을 지켰던 사람들이 ‘영국인’을 뜻하는 ‘Anglican’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자기 교단의 이름을 ‘The Scottish Episcopal Church’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 미국에서 식민지 개척을 했던 영국인들은 미국 땅에 ‘잉글랜드 성공회’를 세우는데 성공하였지만 나중에 독립 전쟁이 일어나면서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영국 색채가 드러나는 ‘Anglican’이라는 명칭보다는 ‘Episcopal’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성공회들은 그 이후로 ‘Episcopal Church’를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이와같은 개신교 교단들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교회의 직제와 조직을 자신들의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내용과 의미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사실 ‘장로’라는 호칭은 이미 구약시대부터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3장 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는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라고 말하는데 이미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는 백성들의 지도자로서 ‘장로’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도 산헤드린 공의회를 구성하는 ‘장로들’이 있었고 초대 교회에서도 사도행전 11장 30절을 보면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는 말씀처럼 이미 교회 안에 장로들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4장 23절을 보면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바울과 바나바가 장로들을 임직하는 장면입니다.
또한 ‘감독’이라는 단어도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는데,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3장 1절 이하에서 ‘감독’(ἐπισκοπῆς)의 자격과 조건에 대해 말하였고, 사도행전 20장 28절을 보면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는 구절에도 ‘감독자’라는 말이 나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6장 16절을 보면 장로나 감독이라는 표현과는 달리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렇게 초대 교회에서 장로와 감독은 아주 넓은 의미로 사용되면서 주로 설교, 교훈, 치리, 훈련 등을 담당하는 사람을 총칭하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레데 교회는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혀 있었지만 이와같은 역할을 담당할 장로/감독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짓 교사들의 미혹에 맞서서 참된 복음의 진리를 가르칠 수 있는 교회의 일꾼들을 세워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도로 하여금 장로를 세우라고 말하면서 어떤 사람을 장로로 세워야 하는 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몇가지 기준이 나오는데, 6절을 보면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고 말합니다. 현대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장로(목사, 감독)의 모습과 초대 교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기준이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현대 교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장로(목회자)의 능력은 ‘설교 능력, 학력, 실력 혹은 교회를 운영할 수 있는 재정적인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볼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런 것들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가정 생활’이었습니다.
먼저 장로가 될 사람은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흠잡을 데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가정 생활에서 흠잡을 데가 없어야 한다는 말인데, 특히 ‘한 아내의 남편’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한’명의 아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여성은 장로가 될 수 없고 남성만 가능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당시 사회는 일부다처제의 관습이 용인되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의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이런 관습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한 명의 여성만을 아내로 두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관습을 핑계로 성적인 문란함에 빠지는 일이 많은 상황에서 교회를 돌보는 ‘장로’는 그런 점에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목회자와 장로님들의 자녀들이 교회에서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지나치게 높은 기준으로 평가를 받아야 하거나 작은 실수를 저질러도 과도한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목회자의 자녀에 대해서는 적당한 무관심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회자들이 자녀들을 아무렇게나 키워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방탕하다’는 것은 ‘환락’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그래서 무절제하고 쾌락을 추구하면서 삶을 허비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자녀들이 무절제와 쾌락에 빠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교회를 섬기고 돌보는 장로가 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먼저 자녀들을 건강하게 돌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일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불순종’한다는 것은 ‘고의로 거역하는 것’을 나타내고, 세 번째로 ‘믿는 자녀’라는 것은 말 그대로 장로의 자녀가 ‘믿음의 자녀’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자녀들에게 믿음을 가르치고 본을 보여서 믿음의 자녀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인데, 왜냐하면 자신의 가정에서조차 믿음의 본이 되지 않는 사람이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을 가르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장로의 직분을 잘 수행하려면 먼저 장로의 가정이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돌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정과 자녀를 잘 돌보는 것이 더욱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모든 일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수 많은 관계들 중에서 가장 먼저 부부 관계가 원만하고 사랑이 넘치는 관계가 되게 하소서.
3. 자녀들에게 본을 보이고 아름다운 신앙의 전통을 가르칠 수 있는 부모가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