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3:1~5, 이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디모데후서 3:1~5, 이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바울은 디모데후서 2장에서 에베소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거짓 교사들과의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디모데후서 3장에서는 이들의 정체와 특징에 대해서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는데, 먼저 1절을 보면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게 된다고 말합니다. 구약에서 ‘말세’는 메시야가 오는 때를 나타내지만 신약에서의 말세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를 나타내는데, 이때를 ‘고통의 때’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기 직전에 가장 혼란스럽고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힘들고 어렵냐면 ‘고통하다’(χαλεποί)라는 단어는 마태복음 8장 28절에서 예수님께서 가다라 지방으로 가실 때 귀신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있었는데 이들이 몹시 ‘사납다’고 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그래서 ‘고통의 때’라는 것은 ‘아주 난폭하고, 위협적인 extremely violent, fierce’상황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2절부터는 사람들이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한 설명인데 가장 먼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이 두가지를 가장 먼저 언급하는 이유는 이것이 다른 모든 죄악의 뿌리가 되기 때문인데, 먼저 ‘자기를 사랑’(φίλαυτοι)한다는 것은 ‘자기만 사랑하는 이기적인 사람’을 나타냅니다. 이런 사람은 모든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과 완전히 정반대의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돈을 사랑’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이미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왜냐하면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가장 큰 유혹이 바로 물질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세가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떠나서 이기적인 존재가 되고 물질을 사랑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랑(ἀλαζόνες)하며 교만하며(ὑπερήφανοι)’인데 ‘자랑한다’는 것은 시골에서 아무 효과없는 약을 과장해서 판매하는 약장수의 선전을 나타내고, ‘교만하다’는 것은 ‘거만하다, 경멸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자기보다 가난하거나 약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거짓된 약을 파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지 상관하지 않고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교만한 사람도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을 평가할 때도 돈으로만 평가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라고 말하는데, ‘비방한다’는 것은 영혼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모독(신성모독)’한다는 뜻이고 ‘부모를 거역’하는 것은 육신의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감사와 거룩’이 없다는 것은 자신들에게 가장 큰 은혜를 베푼 부모에게 감사하지 않는 것이고, ‘거룩하지 않다’는 것은 영혼의 부모이신 하나님을 경홀하게 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점점 하나님과 부모님에 대해 ‘패륜적’으로 되는 것을 나타냅니다.
3절에는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라고 말합니다. ‘무정하다’는 것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처럼 가장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애정마저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원통함을 풀지 않는다’는 것은 ‘절대로 화해하지 않고, 여전히 앙심을 품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모함’(διάβολοι)한다는 것은 거짓말과 중상모략을 나타내는데 공교롭게도 이 단어는 ‘διαβόλου, 마귀’를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거짓말과 중상모략은 모두 마귀가 사용하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실을 왜곡하는 모든 행위들, 예를 들어 과장과 축소가 모두 마귀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절제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이나 욕망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고, ‘사납다’는 것은 ‘야만적인, 짐승같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선보다는 악을, 빛보다는 어둠을 추구하는 모습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4절에는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라고 말합니다. ‘배신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저버리는 행위이고, ‘조급하다’는 것은 말과 행동이 경솔하여 분별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만하’는 것은 ‘자기 중심, 자만, 허세’를 뜻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쾌락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드러내놓고 악을 행하면서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겉으로는 알 수 없게 숨겨져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5절을 보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종교적인 외형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겉으로 보면 신앙이 있는 사람처럼 기도도 하고 예배도 드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기도하면서도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고, 예배를 드리면서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찬송을 하면서도 그 찬송이 하나님께 드려진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교회를 다니는 무신론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겉으로 드러난 악과 죄는 경고를 하거나 피할 수도 있고, 맞서 싸울 수도 있습니다. 상대가 누구인지 명백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와같은 사람들로부터 겪는 고난과 박해는 힘들기는 하지만 우리의 신앙을 파괴하기 보다는 오히려 단단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사람들은 이렇게 경건의 모양을 갖추고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교회를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흔들고 실족하게 만들고, 신앙에 대한 회의주의를 전파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명령합니다. ‘돌아선다’는 것은 ‘등을 돌리다’는 뜻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 돈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사람들로부터 등을 돌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