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역사 8】 박해가 끝난 후에 일어난 교회의 변화, 요한계시록 22:18~21
【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역사 8】 박해가 끝난 후에 일어난 교회의 변화, 요한계시록 22:18~21
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지난 시간에 살펴본 수도원 운동은 교회가 제도화와 세속화의 길로 가게 되면서 신앙의 순수성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그래서 이와같은 모습을 보면서 제도 교회 밖에서 기독교적인 삶의 이상을 추구하려고 했던 운동이 수도원 운동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박해가 끝난 이후에 교회 안에 어떤 변화가 생겨났길래 이들은 제도 교회 안에서 이와같은 희망을 품을 수 없었던 것일까요? 그들은 왜 사막으로 나가려고 했던 것일까요?
먼저 박해 이전과 이후에 일어난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가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교회는 로마 제국과 적대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숨어서 예배를 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교회가 공개적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는 그동안 교회로부터 빼앗았던 재산을 되돌려 주었고, 일요일을 공식적인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여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주일예배가 기독교의 공식적인 예배의 날이 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동안 로마의 이교도들이 신전으로 사용하던 장소를 기독교인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기도 하였는데, 그래서 카타콤의 무덤에서 예배를 드리던 교회가 박해 이후에는 엄청난 건축물을 국가로부터 무상으로 받아서 교회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바실리카’라는 말이 이제는 교회의 건축 양식을 나타내는 말이 되었고 점차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 등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로마 시대 최초의 예배당은 고대 신전을 변형해서 사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렇게 되자 교회와 국가의 관계도 바뀌었는데,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은 종말에 대한 예언을 하면서 ‘붉은 용’, 혹은 ‘바벨론’이라는 표현을 통해 로마를 적그리스도의 세력으로 지칭하였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기독교를 박해하는 로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과 태도를 지닐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박해가 끝난 이후에는 오히려 로마로부터 교회가 여러 가지 혜택과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동안 로마를 비판하던 기독교가 이제는 로마와 함께 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검을 든 자는 검으로 망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전쟁을 거부하고 평화를 지켰던 기독교인들이 점차 로마 군대에 참여하게 되었고, 나중에 십자군 전쟁에서는 아예 전쟁을 주도하고 일으키는 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또한 성직자들의 신분에도 변화가 생겼는데, 그동안 교회의 성직자들은 순교와 핍박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주교와 감독이 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에는 로마에서 성직자들을 존중하고 공무원처럼 신분을 보장해 주었습니다. 또한 군대를 면제받을 수 있는 특권을 주었고, 그동안 행정관들이 하던 역할들을 감독과 주교들이 할 수 있도록 권한을 나누어 주기도 하였습니다.(캐나다에서 결혼 주례를 목사들이 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것도 비슷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자 교회의 감독과 주교의 사회적 신분이 급격하게 상승하게 되었고, 성직자들은 모든 사람들이 선망하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순교의 자리였던 주교의 자리가 이제 권력의 자리가 되면서 그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하는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교인들의 구성원에도 변화가 생겨났는데, 주교와 감독의 경우처럼 처음에는 아무나 쉽게 교회의 일원이 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세례를 받기까지 최소한 3년 정도의 철저한 문답 교육을 받아야 했고, 그 이후에도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자칫 순교를 당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엄청난 결단을 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공인이 되고 특히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380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이후에는 기독교가 로마의 유일한 국가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특혜와 특권을 누리는 위치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교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크게 바뀌게 되었는데, 그전까지 교회는 주로 가난한 하층 계층의 사람들이 주를 이루었는데(물론 이들 중에는 부유하고 고위직에 있었던 신앙인도 일부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는 점차 부유하고 기득권을 지닌 상류 계층의 사람들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또한 신앙적인 면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는데, 박해를 받던 시기에는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이 ‘마라나타’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초대 교회 성도들이 박해와 고난을 끝까지 견딜 수 있었던 희망은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종말론적 신앙, 재림에 대한 신앙’이었습니다. 그런데 박해가 끝나고 교회가 부와 권력을 갖고 로마의 보호를 받게 되자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많은 기독교인들이 로마 제국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천국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기대보다는 지금 살아가는 삶에서 만족을 누리려고 하였습니다. (나중에 어거스틴이 ‘신(하나님)의 도성’이라는 책을 쓰게 된 이유가 신의 제국이라고 믿었던 (서)로마가 476년 야만족(바바리안)들에 의해 망하게 되자 여기에 대한 신학적인 반성을 하면서 로마가 사실은 신의 도성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밝히려고 하였습니다.)
어쨌든 박해가 끝난 이후부터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삶의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성령님의 임재에 대한 신앙 그리고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와 임박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삶이 점점 옅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기독교 신앙의 근원적인 힘이 사라지게 되자 박해 이후의 교회는 겉모양만 남은 교회로 전락하게 되었고, 돈과 명예를 추구하면서 세속 권력과 동화되는 과정을 밟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제 살펴본 수도원 운동이 이 시기에 급작스럽게 일어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처음에 박해가 끝났을 때 모든 사람들은 교회가 큰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외적인 핍박이 사라지면서 신앙의 순수성을 잃게 되었고, 이와같은 교회의 현실을 직시한 소수의 사람들이 외부적인 박해가 사라지자 신앙의 순수성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사막으로 들어가서 자기 스스로 박해의 환경을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사막의 교부가 생겨나게 된 배경이었습니다.
최근에 많은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을 합니다. 여기서 ‘초대 교회’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 교회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박해를 당하면서도 신앙을 견뎌냈던 교회와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현대의 교회가 신앙의 자유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순수성이 약화되면서 돈과 권력을 추구하면서 세속화 되었고, 종말론적 기대와 소망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다시금 초대 교회의 신앙, 순교와 핍박을 견뎌냈던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313년부터 로마 제국과 기독교가 결합하게 체제를 크리스텐돔(Christiendom=Christianity+kingdom)이라고 하는데, 이때부터 중세까지 유일한 종교, 유일한 신학으로 서구 사회를 지배하였던 기독교를 다시 초대 교회의 정신으로 회복하려는 시도가 앞으로 살펴보게 될 종교 개혁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주님을 기다리는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2. 이 세상의 삶에서 안주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고난조차도 은혜로 고백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