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역사 6】 도나투스 논쟁, 요한 1서 5:13~21


 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역사 6도나투스 논쟁, 요한 15:13~21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17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21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오늘은 [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역사]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기독교는 로마 제국으로부터 300여년 동안 크게 10차례에 걸친 박해를 받다가 마침내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공인된 종교가 되었고 마침내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카타콤의 종교에서 황제의 종교, 박해받던 종교에서 지배하는 종교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기독교는 더 이상 로마 제국을 적그리스도적인 바벨론으로 대하지 않고 오히려 천상의 하나님의 나라를 지상에 구현한 기독교 제국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변화가 무조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고난을 부담스러워할만큼 부와 권력을 소유하게 된 교회는 박해 시대의 순수함과 열정을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 내부적으로 박해와 관련된 후유증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예를 들면 4세기 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로 인해 강압이나 두려움에 의해 성경을 버리거나 부인하는 자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도나투스는 이런 범죄를 저지른 지도자들로부터 받은 세례를 이단 세례(혹은 배교자 세례)라고 말하면서 이와같은 세례는 무효하며 보편적인 교회에 들어온 이단자들(배교자들)은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로마의 주교인 스테판 1세는 삼위일체 혹은 예수의 이름으로 받은 세례라면 세례를 시행하는 사람이 누구냐와 관계없이 유효하다는 입장을 주장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실행된 세례의 유일회성과 유효성을 인정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와같은 문제가 결국은 어거스틴과 도나투스(Donatus) 사이의 논쟁으로 첨예화되었습니다. 결국 어거스틴이 주장했던 바와 같이 교회가 행하는 성례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일로서 그 유효성은 성례를 행하는 사제나 주교의 개인적인 거룩성이 아니라 교회의 객관적인 거룩성에 의존하고 있음(사효성, ex opere operato)을 강조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매우 비슷한 상황이 한국 기독교의 역사에도 있었는데, 1884년 자생적 신앙공동체인 소래 교회로부터 시작한 한국의 기독교는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신사 참배 문제로 엄청난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936년 로마 가톨릭 교회로부터 시작해서 성결교, 구세군, 성공회, 감리교가 신사참배를 받아들였고 마침내 장로교(1938)에서도 신사 참배를 수용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주기철 목사를 필두로 채정민, 이기선, 김선두 목사 등은 신사참배를 반대하였다는 이유로 투옥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유일했던 평양장로회신학교는 신사참배 문제로 무기한 휴교를 하면서 저항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조선총독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교회 지도자들에게 구약성경을 사용하지 말 것과 장로교와 감리교가 통합하여 새로운 혁신 교단을 만들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다니엘서를 비롯한 대부분의 구약성경을 없애고, 요한 계시록과 찬송가를 개편하게 되었는데, 나중에는 구약을 전부 없애고 신약성경도 4복음서 외에는 모두 없애 버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19458, 해방을 불과 2주일을 앞두고 모든 교파가 해산되고 <일본 기독교 조선 교단>으로 통합되어 예속되고 말았습니다.

 

이와같은 상황에서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은 신사참배에 동조하고, 황국신민이 된 것을 감사하였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것을 취소하고 천조대신의 아들이 되기 위하여 한강, 부산의 송도 앞 바다에서 일본의 귀신대장 미소기바라이’(淸淨)이름으로 다시 세례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해주 장로교 김응규 목사는 천황 사진에 배례하기를 건의하여 배례하였고, 해주 강태동 감리교회 관리자 박봉근은 신자 20여 명과 함께 아예 자기가 다니는 교회를 폐쇄하였습니다. 경남 조평리 성결교회 신도들도 교회 사상이 일본 정신과 상용될 수 없다고 하여 해산하였고, 전남 보성에서는 기독교 교리가 국체에 반하는 것이라 하여 교인들이 탈교하고, 예배당을 정신도장으로 개칭하고 그 안에 가미다나’(신사)를 설치하였다. 특히 김활란은 조선언론 보국회에 가입하여 일본의 하수인 노릇을 하였고, 정인과는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것은 국민으로서 하지 못할 자국에 반기를 든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 가미다나가 설치되고, 예배를 드리기 전에 먼저 절을 하고 천황을 향해 동방요배를 한 다음 예배를 드렸으며 목사들은 일본식 군복을 입고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도신경이 신도의 창조설화와 위배된다고 하여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를 삭제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45815일 해방이 되었는데, 주기철 목사를 비롯한 50여명의 성도들은 끝내 순교하였고,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신앙을 지키던 성도들이 감격적인 출옥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한국 교회 재건을 위해서 교회의 지도자들은 신사참배를 하였으니 권징의 길을 취하여 통회와 정화한 후 교역에 나갈 것, 권징은 자책이나 자숙을 방법으로 하되, 목사는 최소한 2개월간은 통회 자복할 것, 목사와 장로의 휴직 기간에는 집사와 평신도들이 예배를 인도할 것, 교회 재건의 기본 원칙을 전국에 전달하여 일제히 실행하게 할 것, 교역자 양성을 위해 신학교를 재건 복구할 것 등을 결의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와같은 재건 방안은 당시 신사참배를 주도적으로 결의했던 사람들의 반발에 부딪히게 되었고, 결국 재건을 주장했던 성도들은 교단을 탈퇴하면서 현재의 고신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말은 의미가 없겠지만, ‘만약도나투스가 제기했던 것처럼 배교했던 지도자들이 세례를 중지하고 참회하는 시간을 가졌더라면, ‘만약도나투스 일파도 극단적인 분파주의로 가지 않고 배교자들이 회개하고 참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더라면, 그리고 만약한국 교회가 해방 이후에 신사참배의 죄를 진지하게 성찰했더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봅니다. 물론 도나투스가 제기했던 인효론’(ex opere operantis)은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공덕으로 의로움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도나투스가 제기했던 문제는 단지 신학적인 의미 뿐만 아니라 신앙윤리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가 박해받는 종교에서 지배하는 종교가 되면서 신앙의 순수성이 약화되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희미해지면서 점차 타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는 점에서 도나투스의 문제 제기는 기독교를 새롭게 갱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교권을 장악하고 있던 사람들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되었고, 도나투스파도 기성 교회를 떠나서 스스로 분리주의의 길로 가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것은 이와같은 상황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부와 권력을 소유한 교회가 점차 타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자 교회를 등지고 온전히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광야로 나가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흔히 사막의 교부들로 알려진 사람들인데, 이들은 외부(로마)로부터 오는 고난과 박해가 사라지자 스스로 고난을 자처하면서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는 수도사가 되려고 하였고 나중에 이들을 통해 기독교 수도원 운동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진리를 지키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진리와 함께 용서와 사랑도 이루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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