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2:14~15,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디모데후서 2:14~15,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14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목회자가 설교를 할 때 가장 쉽게 빠지는 딜레마가 ‘예화’에 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설교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좋은 예화가 필요한데, 자칫 설교 후에 예화만 남고 성경 말씀은 기억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화를 사용하는 게 좋은지 아닌지 혹은 사용한다면 어떤 예화가 좋은 예화인지를 늘 고민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야기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데, 14절을 보면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다툼’(λογομαχεῖ)은 처음에는 ‘말로 (설명하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의미였는데 점차 ‘말로 다투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다툼을 하지 말라는 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말다툼이 아니라 디모데전서 1장 4절에서 말했던 ‘신화와 끝없는 족보’ 그리고 디모데전서 4장 7절에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는 말씀에서 언급했던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와 같은 이단들의 가르침과 변론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당시 에베소 교회 안에 침투한 거짓 교사들이 복음의 진리를 왜곡시키면서 교회를 분열시키고 있었는데 여기에 대해 변론이나 논쟁하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를 망하게 하’기 때문인데, 이단에 빠진 사람과 논쟁을 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된 주장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하고, 또한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오히려 호기심을 갖고 이단에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에 생겨난 여러 이단들의 사례를 보면 성도들을 미혹하기 위해 미리 준비된 매뉴얼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대화를 하게 되면 자칫 이단의 거짓된 논리에 쉽게 빠지거나 신앙에 대해 잘못된 오해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과 말다툼을 하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고 오히려 이단들이 원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피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 3~5절에서도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어쨌든 바울은 이와같은 말다툼 대신 15절을 보면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크게 세가지 권면을 디모데에게 하고 있는데, 먼저 우리가 이단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믿고 있는 ‘진리의 말씀’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옳게 분별’(ὀρθοτομοῦντα)하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바르다’와 ‘자르다’는 동사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바르게 자르다, to cut straight’는 뜻입니다. 원래 이 단어는 숙련된 기능공이 연장을 사용해서 불필요한 것을 똑바로 자르는 것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신앙의 원리를 지키려면 먼저 잘못된 것을 잘라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무엇이 바른 것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쉽게 타협을 하거나 신앙의 원칙을 훼손하게 되면 이단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맞서서 바르게 대응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부끄러울 것이 없다’(σπουδάζω)는 말은 원래 ‘서두른다, 빠르게 하다’는 뜻으로 ‘네 자신을 서두른다’는 것은 스스로 걸림돌이 생기지 않도록 추스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특히 윤리적인 측면에서 아무런 걸림돌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인정(δόκιμον)된 사람’이라는 말은 ‘시험을 거친 후에 받아들여지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단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맞서서 복음의 진리를 지키는 일꾼이 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지혜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삶을 경건하고 부끄러움이 없도록 잘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와같은 일에서 약점을 잡히면 이단들의 잘못된 가르침과 행동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 성실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παραστῆσαι)’고 말하는데,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린다’는 것은 ‘stand by, appear’라는 뜻이고, 더 나아가 자신을 ‘선물처럼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코람데오라는 말처럼 언제나 ‘신전의식’을 갖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도록 힘쓴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단이나 잘못된 가르침과의 논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 안에서 그와같은 논쟁이 생겨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는 것인데, 그렇게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분별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면서 헌신하는 사람들에게는 잘못된 가르침이 틈을 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복음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삶에 있어서 부끄러움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우리의 삶을 날마다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