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역사 12】 종교개혁의 완성-칼뱅, 베드로전서 1:14~16


 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역사 12종교개혁의 완성-칼뱅, 베드로전서 1:14~16

 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종교개혁의 선구자인 존 위클리프와 얀 후스로부터 시작된 종교 개혁 운동은 에라스무스를 통해 루터와 쯔빙글리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종교개혁은 시작되었지만 새로운 기독교의 모습을 정립하기까지는 여러 가지 숙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중세 교회와는 다른 개신교의 신학과 교리, 예배, 교회 조직, 사회와 문화, 예술을 대하는 태도 등등에 관한 기독교인의 새로운 입장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이와같은 상황에서 루터보다 약 20여년 정도 늦게 1509년에 프랑스에서 태어난 장 칼뱅은 개신교 목회 현장과 신학을 재정립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칼뱅은 14세가 되던 때 파리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다가 중도에 오를레앙에서 법학을 공부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신학과 법학을 모두 공부하였기 때문에 나중에 교회의 신학과 행정과 목회를 정립할 수 있는 토대를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칼뱅이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1533년 전후에 니콜라스 콥이 파리 대학 총장으로 취임할 때 취임식 연설문을 칼뱅이 작성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칼뱅에게 수배령이 내려지게 되었습니다. 칼뱅의 글이 전형적인 종교 개혁자들의 사상을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그로 인해 더 이상 프랑스에 머물 수 없었던 칼뱅은 도망자가 되었고(이 과정에서 칼뱅이 개신교인으로 개종한 것으로 추정) 프랑스를 탈출해서 스위스 바젤에 머물면서 1536년에 기독교 강요’(Christianae Religionis Institutio)라는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당시 27세였던 칼뱅은 이 책에서 프랑스 왕실(프랑스와 1)이 자국 내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급진적인 재세례파로 규정하고 탄압하려고 했을 때 여기에 맞서 부패한 가톨릭 세력, 그리고 급진적인 재세례파가 아닌 진정한 종교개혁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시기적으로 칼뱅은 종교개혁 1세대인 루터나 쯔빙글리보다 한 세대 뒤에 활동한 2세대 종교개혁자였습니다. 그래서 루터를 비롯한 초기 종교개혁가들이 세운 원칙을 신학이론으로 체계화하고 확립하려고 했습니다. 특히 칼뱅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와 더불어 거룩한 생활을 통한 성화의 삶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예정설에 대해 말했는데, 인간의 구원 여부는 전적인 신의 섭리이자 의지로 예정되어 있으며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개신교인들은 근면하고 절제된 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왜냐하면 이렇게 하는 것이 신에게 선택받았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칼뱅은 엄격한 생활준칙을 강조하면서 자신이 정말 구원받게 될 사람이라면 신의 말씀에 따라 살면서 겸허하게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칼뱅은 일반계시와는 다른 특별계시로서 성경의 가르침,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진리를 확립하였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것이 인간에게 가능한 이유가 오직 성령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점에서 성령론을 신학적으로 정초하였습니다.

그런데 칼뱅이 본격적으로 종교 개혁 운동에 뛰어들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사건 때문이었는데, 사실 칼뱅은 복잡한 시국에서 분쟁을 피해 스트라스부르로 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스트라스부르로 가는 길에 15368, 제네바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되었고, 칼뱅이 제네바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기욤 파렐(Guillaume Farel, 1489~1565)이 찾아와 제네바를 위해 헌신해줄 것을 강권하였습니다. 칼뱅은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파렐의 강력한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개혁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파렐과 칼뱅이 제시한 개혁안은 제네바 시의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1538년 제네바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이렇게 1차 제네바 종교개혁에 실패한 칼뱅은 스트라스부르로 가서 프랑스 난민을 위한 목회를 하며 저술 활동을 벌이면서 마틴 부처(Martin Bucer, 1491~1551)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칼뱅은 기독교 강요증보판을 내고 로마서 주석을 시작으로 신약성서의 주석본을 잇달아 펴냈습니다.

그런데 1541년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원하는 정부가 선출되면서 칼뱅은 다시 제네바로 돌아와 종교개혁을 지도하게 되었는데, 의회로부터 강력한 권한을 위임받은 칼뱅은 교회의 조직을 목사, 장로, 교사, 집사로 구성된 4중직으로 구성하고, 잘못한 사람을 치리하고 징계하는 당회를 설립하면서 장로교 체제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네바 아케데미’(나중에 제네바 대학교)를 세우고 종교개혁의 신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이 신학교가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신학교가 되어서 칼뱅으로부터 배웠던 제자들이 전 유럽으로 퍼져서 칼뱅의 신학과 사상을 전파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존 녹스(John Knox)를 비롯해서 많은 영국인들이 칼뱅의 영향을 받고 청교도혁명을 일으켰고, 네덜란드, 헝가리에도 칼뱅의 개혁신앙이 전파됐으며, 독일에까지 전해졌습니다.

또한 칼뱅은 참된 교회를 위해 필요한 것이 예배의 회복이라고 말했는데, 예배는 말씀 선포, 구제, 성만찬, 기도(찬양)가 핵심 요소라고 보았습니다. 특히 신자들이 함께 노래하는 회중 찬양(단선)을 옹호했으며 1539제네바 시편 찬송가’(칼뱅은 찬송가 가사를 임으로 짓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를 처음으로 출간하였고, 1562년에는 시편 전체가 찬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종교 개혁자들은 음악에 대한 견해가 저마다 달랐는데, 쯔빙글리는 회중 찬송을 반대하고 오르간이나 기악을 사용, 그리고 합창도 예배 중에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하였던 반면 루터는 회중 찬송과 오르간과 기악, 그리고 예배 중에 찬양대의 다성음악 찬양도 허락하였습니다. 칼뱅은 회중 찬송을 허락했지만 오르간이나 기악, 성가대의 다성음악을 예배 중에 사용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루터가 개인의 구원에 치중한 반면 칼뱅은 교회뿐만 아니라 세상까지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공동체가 되기위해서 사회와 정치의 구조까지 개혁하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칼뱅의 사상은 교회를 넘어 유럽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서구 사회 전체에 광범위하게 미쳤는데, 특히 칼뱅의 영향은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칼뱅에게도 결정적인 오점으로 남은 사건이 있었는데, 칼뱅의 예정론을 비판한 의사 볼섹을 제네바에서 추방하였고, 또 삼위일체를 부정한 미카엘 세르베투스’(Michael Servetus, 1511~1553)를 화형에 처하였습니다. 물론 이들의 주장이 개신교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렵고 신학적으로 잘못된 견해라고 하더라도 이들을 추방과 사형으로 처벌한 것은 마치 종교개혁자를 박해했던 가톨릭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쨌든 네덜란드의 교회사가 프람스마(L. Praamsma)모든 시대의 교회’(De kerk van alle tijden, 4 vols)라는 교회사 책에서 루터의 최종목표는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었고 칼빈의 최종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이었다라고 회고하였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루터의 주요 관심사는 경건한 인간이었고, 칼빈의 주된 관심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통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하나님의 거룩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일상의 삶에서 날마다 성화된 삶을 실천하게 하소서.

3.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는 예배가 회복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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