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1:13~18,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디모데후서 1:13~18,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15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16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17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18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은 계속해서 디모데에게 몇가지 권면을 하는데, 먼저 13절을 보면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라고 말합니다. ‘바른 말’은 지금까지 바울이 디모데에게 가르쳐준 참된 복음과 신앙의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바른 말’을 그냥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본받아 지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킬 수’ 있을까요? 그 구체적인 방법을 ‘믿음과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실력이나 노력으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아낌없이 베풀어 주시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복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4절을 보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거하신다’는 말은 ‘거주한다’는 동사의 현재분사형입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계속적으로 우리 안에 머물러 계심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아’는 ‘성령님을 통하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우리의 능력과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을 통하여’ 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면 성령님을 통하여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울이 지금까지 디모데에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 즉 ‘복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특히 ‘지킨다’는 말은 ‘잃어버리거나 손상되지 않도록 보존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거짓 교사들로 말미암아 복음이 변형되고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고 복음의 순수성을 간직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 그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복음’의 아름다운 것을 간직할 수 있지만 또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 하는 동역자’입니다. 그래서 15절부터는 바울과 함께 했던 동역자 혹은 바울을 버렸던 사람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먼저 15절을 보면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는 다른 곳에서는 언급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바울에게 어떤 일을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바울은 아시아에 있는 많은 사람에게서 버림을 받은 후에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아시아에서 특히 에베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복음을 선포했고 그들을 가르쳤고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많은 수고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 후에 사람들은 바울에게서 완전히 돌아서 버린 것입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라는 말이 있는데, 상황이 좋을 때는 친구가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어렵고 힘든 상황이 되면 주변에 남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되면 누가 진짜 친구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바울에게는 그런 친구가 16절에 나오는 ‘오네시보로’였습니다.
오네시보로는 모든 아시아 사람이 바울을 버린 상황 속에서도 한결같이 바울을 지켜주었습니다. 그래서 16절을 보면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었다고 말합니다. ‘격려하다’는 말은 ‘회복하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오네시보로를 통해 지친 몸과 마음이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오네시보로’라는 이름의 뜻이 ‘유익을 주는 자’인데, 오네시보로는 자신의 이름처럼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네시보로는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합니다. 앞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8절,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하지 말라’고 말한 바 있었습니다. 이 말을 거꾸로 생각해 보면 아시아의 모든 사람들이 바울을 부끄러워했다는 것입니다. 로마 감옥에 갇혀 사슬에 매여 있는 바울의 모습이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오네시보로를 예로 들어서 말하는 것은 디모데도 오네시보로처럼 복음으로 인한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17절을 보면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다고 말합니다. 만약 오네시보로가 혹시 있을지 모르는 위험이나 핍박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옥에 있는 죄수를 찾아서 만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고 자칫 자신도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6절에서 ‘오네시보로’라고 말하지 않고 ‘오네시보로의 집’이라고 말하는 이유에 대해 이미 오네시보로가 죽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오네시보로가 감옥에 갇힌 바울을 방문하다가 자신도 붙잡혀 순교를 당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18절을 보면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고 말합니다. 에베소 교회에서 오네시보로의 봉사가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네시보로를 생각하면서 두 번이나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16절),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만큼 바울에게 오네시보로는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오네시보로는 아주 유명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디모데후서에만 잠깐 그 이름이 언급되고 있을 뿐입니다. 바울처럼 가르침과 복음에 능한 사람도 아니었고, 디모데처럼 교회를 맡아서 수고했던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에게 오네시보로는 잊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부겔로와 허모게네와 같은 사람도 있었지만 오네시보로와 같은 사람이 있었기에 바울도 끝까지 용기를 잃지 않고 복음의 아름다운 것을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과 사랑으로 복음을 지키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의 아름다운 것을 지키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오네시보로처럼 봉사와 섬김과 사랑과 헌신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