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6:3~5,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라
디모데전서 6:3~5,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라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디모데전서 6장에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주는 마지막 교훈과 당부가 나오는데, 먼저 3절부터 5절까지는 가급적 멀리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3절을 보면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다른 교훈’은 1장 3절에서 언급했던 ‘다른 교훈’이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1:4)하는 것을 넘어서 완전히 ‘이단 사상’에 빠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당시 헬라 세계에는 궤변론자(sophist)들이 많이 사람들에게 웅변술을 가르치는 일이 많이 있었는데, 영지주의자들이 이와 비슷하게 이단 사상을 교회에 끌어들여 혼란을 일으키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다른 교훈’을 따르는 사람들의 특징은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않고 있었는데, 먼저 ‘바른 말’은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하셨던 가르침과 교훈을 의미하고, 또한 ‘경건에 관한 교훈’은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정립된 기독교의 진리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바른 말’은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모두 포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교훈’에 빠진 사람들은 이와같은 가르침과 교훈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따르지 않았다’는 것은 소극적으로 수용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따른다’는 말이 ‘~에게로 가다, 접근하다, 동의하다(agree)’는 뜻이기 때문에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왜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거부한 것일까요? 그 이유가 4절에 나오는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교만’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권위를 자기 마음대로 거부한다는 의미이고,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참된 진리에 대해 전혀 무지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또한 이들은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데, ‘변론’(ζητήσεις)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연구하고 질문한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모순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쟁’(λογομαχίας)은 ‘λόγος’(말)와 ‘μάχομαι’(싸움)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궤변론자들이 모순된 질문과 언쟁을 하면서 다른 사람을 곤혹스럽게 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좋아한다’(νοσῶν)는 말은 ‘unhealthy’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참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쓸데없는 논쟁과 모순된 말로 스스로를 ‘병들’게 하고 다른 사람들도 ‘병들게 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런 사람들이 맺는 열매는 4절 하반절을 보면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라는 열매를 맺게 되는데, ‘투기’는 ‘시기’를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언쟁을 하게 되면 상대방의 말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말싸움에 져도 쉽게 승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기려고 하는 마음을 ‘시기, 투기’라고 표현하였고, 그 다음에 ‘분쟁’은 일어나는데, 시기하는 마음의 결과 마침내 ‘분쟁’이 되고, 또 ‘비방’으로 이어지는데, 원래 ‘비방’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을 향할 때는 ‘신성모독’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사람에게는 ‘욕, 비방’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악한 생각’은 ‘의심하다, 추측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NIV 성경에서는 ‘악한 의심’(evil suspicions,NIV)으로 번역하기도 하였습니다. 바울이 ‘다른 교훈’을 전하는 사람을 조심하고 피하라고 권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이런 사람들과 대화를 지속하다 보면 결국 믿음을 잃어버리고 의심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5절을 보면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고 말합니다. 4절에서 바울은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결과 ‘투기, 분쟁, 비방, 악한 생각’을 맺게 된다고 말했는데, 5절에는 여기에 덧붙여 ‘다툼’이 일어나는 것도 또다른 악한 열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다툼’(διαπαρατριβαὶ)은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를 잃어’ 버렸기 때문이고,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마음이 부패’하다는 것은 ‘완료 수동분사’로 ‘철저히 부패된 상태’를 나타내고, ‘진리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과거에 진리를 소유한 경험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박탈당한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한다는 것은 경건의 모양을 취함으로 경제적인 이익을 얻으려는 시도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타락한 마음으로 진리를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다툼’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분쟁이 일어날 때 그 내막을 자세히 살펴보면 진리에 관한 거룩한 투쟁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거의 대부분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성경과 진리를 말하지만 속셈으로는 이익과 유익을 지키기 위한 다툼에 불과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외부적으로는 비기독교, 반기독교적인 문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고 내부적으로는 다툼과 갈등이라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복음의 진리에 굳게 서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앙 생활의 기초인 ‘바른 말 즉 예수님의 말씀과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과 무지로 인해 생겨나는 변론과 언쟁은 결국 분열과 다툼이라는 악한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바른 교훈을 지켜 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다른 교훈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2.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교훈을 따르게 하소서.
3.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교만과 무지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