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6:1~2, 그리스도인의 사회 생활

디모데전서 6:1~2, 그리스도인의 사회 생활 

1 무릇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2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디모데전서에서 바울은 주로 교회 안에서 교회를 섬기는 직분자의 자격과 조건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감독, 장로, 집사, 여성 사역자인 과부 등 여러 직분자들이 어떻게 교회 공동체를 위해 사역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디모데전서 61, 2절에는 편지를 마무리하기 전에 세속 사회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먼저 1절을 보면, ‘무릇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문자 그대로 노예들을 나타냅니다. 당시 로마에는 수많은 노예들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처음부터 노예로 태어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경로로 노예가 되기도 했는데, 전쟁에서 패한 패전국 사람들이 노예가 되기도 하였고, 주위에 있는 약소 국가들로부터 노예를 사들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한 로마의 자유인 중에서 빚을 청산하지 못하거나, 죄를 짓고 노예가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노예라고 모두 비참한 상황에서 강제 노동을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인들은 노예들에게 후한 대우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요리사, 이발사, 주치의 등 전문적인 일을 하며 상당한 지위를 갖고 있는 노예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신약 성경에는 노예에 관한 언급이 여러차례 나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린도전서 721절을 보면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고 말하고, 에베소서 65절에도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고 말합니다. 이외에도 여러 본문에서 종들을 언급하는 것으로 볼 때 초대 교회 교인들 중에도 노예들이 상당히 존재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바울은 이와같은 사람들에게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의 이와같은 언급은 노예 제도를 인정하거나 옹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바울의 관심은 노예 제도 자체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노예 제도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더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상전들을 마땅히 공경하라고 말하는데, 여기에 나오는 상전들은 특히 비기독교인 상전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이 비록 비기독교인이라도 존경하고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않을 수 있기 때문인데, 다시 말해서 기독교인 노예가 비기독교인 상전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자칫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2절을 보면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고 말합니다. 1절에 나오는 상전들과 달리 2절에 나오는 상전은 믿는 상전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대할 때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도록 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유익을 받는 자들, 사랑을 받는 자는 모두 상전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노예들이 섬기는 상전들 역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잘 섬겨서 유익을 받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여기에 나오는 것과 같은 상전과 같은 계급적 구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이 의미가 있는 것은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속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직장과 회사에서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만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와같은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속 사회를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그리스도인들이 세속 사회에서 자기 정체성을 지키는 방법은 회사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겠지만,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통해 세속 사회에서도 하나님을 증거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잠언 309절에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욕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주민 선교를 하시는 김진수 장로님께서 쓰신 선한 영향력이라는 책을 보면 자신의 기업 경영의 원칙을 정직, integrity’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즈니스 선교에 대해서도 비즈니스를 해서 그 돈으로 선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를 하는 과정 자체가 선교이고 그렇게 선교적인 삶을 살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언급인데,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는 것은 실체가 없는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복음을 육신으로 살아가는 삶을 통해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믿는 않는 사람은 존경과 사랑으로 대하게 하소서.

2. 믿는 사람은 가볍게 여기지 않고 더 잘 섬기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삶의 모습을 통해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역사 1】 마태복음 16:13~20, 교회의 시작-이 반석 위에

디모데전서 3:8~10, 선한 일을 사모하는 사람 3

【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역사 2】 사도행전 11:25~30, 그리스도인

히브리서 3:7~11,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사도행전 5:12~42, 능욕받기에 합당한 자가 되는 기쁨

디모데전서 3:1~3, 선한 일을 사모하는 사람 1

디모데전서 1: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야고보서 1:1~3,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데살로니가후서 3:7~9,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데살로니가후서 3:3, 미쁘신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