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5:8~16,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는 사람
디모데전서 5:8~16,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는 사람
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9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가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로서 10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11 젊은 과부는 올리지 말지니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 가고자 함이니 12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정죄를 받느니라 13 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 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14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15 이미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16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 주고 교회가 짐지지 않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 주게 하려 함이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바울은 계속해서 디모데에게 교회 안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일들, 혹은 성도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권면을 하고 있는데, 8절을 보면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앞서 4절에서 ‘자녀나 손자들이’ 있는 경우에는 교회에서 과부들을 돌보기보다는 자식들이 먼저 부모에게 효를 행하도록 하라고 말한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친족’(직계 가족) 중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부)이 있는데 그런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믿음을 배반’한 사람,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사랑’인데, 자기의 직계 가족조차도 돌보지 않는 사람은 사랑을 행하는 불신자보다 훨씬 못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배반’했다는 것은 교회의 가르침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왜냐하면 ‘신앙’의 고백은 ‘삶’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가족을 돌보지 않는 사람이 고백하는 신앙은 진실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것은 자기의 가족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랑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사랑은 가족의 한계를 뛰어넘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하는 것은 이와같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자기의 가족과 친족을 돌보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9절부터는 다시 ‘과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먼저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의 나이가 육십’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명부에 올린다’는 것은 신약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것인데 초대 교회에는 이미 과부들에 대한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제도적인 장치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나이를 60살이 넘어야 한다고 정한 이유는 재혼의 가능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다면 살아가기가 불가능한 나이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10절을 보면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사람들로부터 착한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자녀를 양육’한다는 것은 잘 양육하여 기른다는 것이고, 나그네를 섬기고 성도들의 발을 씻는 것은 약한 이웃과 성도들을 섬기고 돕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와같은 규정을 보면 이것이 교회의 구제와 도움을 받을 ‘과부’를 선정하는 기준인지 아니면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의 기준을 나타내는 것이 헷갈릴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이 있고 나그네를 섬기고 성도들을 돕고, 심지어 환난 당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라면 굳이 구제를 받을 대상으로 선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나오는 ‘과부’는 단순히 남편과 사별한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여성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교회 사역에 참여하고 헌신 할 수 있는 직제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초대 교회 안에서 여성들이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고 환자나 가난한 자를 심방하고 구제하는 일을 할 때 함께 협력하는 여성들로서 예전에 한국 교회에서 연세가 많은 여성 분들 중에서 ‘여자 전도사님’으로 사역하게 했던 경우와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1절을 보면 ‘젊은 과부’는 명부에 올리지 말라고 말하면서 크게 두가지 이유를 들고 있는데, 하나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 가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젊은 여성인 경우에는 다시 재혼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를 배반’한다고 말하는데, 그래서 결국 12절을 보면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정죄를 받느니라 ’고 말합니다. 그런데 ‘처음 믿음’을 버렸다는 것은 신앙을 저버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처음에 직분을 맡을 때의 각오와 다짐과 서약’을 지키지 못한다는 뜻이고, 그래서 ‘정죄’를 받게 된다는 것도 조금 과격한 번역으로 오히려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가리는 심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또한 13절을 보면 두 번째 이유가 나오는데, ‘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 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하는데, 명부에 올린 ‘과부’들이 교인들의 집을 방문해서 신앙적인 상담과 조언을 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쓸데 없는 말을’하기도 하고, ‘일을 만들’ 뿐만 아니라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해서 분란을 일으키거나 갈등을 조장하는 일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을 보면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고 말합니다. 젊은 여성인 경우에는 교회의 명부에 등록된 과부로 사역을 하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새로운 가정을 잘 꾸리는 것이 교회와 성도들에게 훨씬 더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5절을 보면 ‘이미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다고 말하는데, 에베소 교회 안에도 젊은 과부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잘못된 가르침에 빠져서 믿음을 저버리고 부도덕한 행위로 교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16절을 보면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 주고 교회가 짐지지 않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 주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는데, 주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경우에는 ‘교회’가 그 짐을 지지 않도록 해서 ‘참 과부’만을 도울 수 있도록 하고, 그들이 교회를 섬기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자기 친족, 가족을 돌보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쓸데없는 말을 하거나 일을 만드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