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5:17~20, 배나 존경할 자로 알라


디모데전서 5:17~20, 배나 존경할 자로 알라 

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18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19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20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교회를 섬기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의 자격과 조건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디모데전서 3장에는 감독과 집사의 자격과 조건에 대해 말하였고, 디모데전서 5장에는 과부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여성 지도자에 대한 자격과 조건을 말하였습니다. 오늘은 계속해서 장로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17절을 보면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장로’(πρεσβύτεροι)라는 단어가 현재의 장로교의 어원인데, 장로의 역할은 한마디로 교회를 다스리는사람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다스린다는 것은 교회의 감독권을 나타내는 것으로 주로 행정적인 업무를 관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로들 중에는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이들이 현재의 목사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교회를 섬기는 장로들존경할 자로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존경이라는 말은 가치, 가격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장로들에 대해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라는 뜻입니다.

 

18절을 보면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신명기 254절을 인용한 것인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타작을 할 때 곡식단을 풀어서 타작마당에 펴 놓고 그 위를 소가 지나가게 하거나 소가 끄는 타작 기구가 지나가도록 하였습니다. 그때 주인은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않고 일하는 동안에 곡식을 마음대로 먹게 하였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누가복음 107절에 예수님께서 70명의 제자를 보내시면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말씀하신 것을 인용한 것입니다.

 

최근에 어떤 목사님께서 목회자의 이중직에 대해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크다고 말씀하신 것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가난한 목사들의 형편을 이해하지 못하는 처사라고 비판하는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존경을 받는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어서 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무작정 말씀하신 것은 아니겠다 싶어서 꽤 긴 분량의 동영상을 다 보았습니다. 거기서 그 목사님이 강조한 것은 목사들이 자립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자립은 교회의 사례만으로 생활하는 법을 배우라는 것이었습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그 안에서 견뎌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성도들이 교회를 책임지고 섬기는 훈련을 하는 기회가 되어야 하는데, 사실 10가정의 성도들의 정직한 십일조를 하면 목회자 1가정이 생활할 수 있는 비용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하는 이유는 성도들로부터 목회자들의 가치(존경)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손쉬운 이중직을 선택하기 보다는 고달프더라도 목회에 전념해서 이와같은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충고였습니다.

 

사실 많은 목회자들이 생활고를 겪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은퇴 이후에도 아무런 생계 대책을 준비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상황을 생각해 보면 바울이 배나 존경할 자로 알라고 했던 권면이 무색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목사들은 자립을 하려고 노력을 해야 하고, 성도들도 목사와 장로들을 배나 존경하고, 또 일꾼이 받을 수 있는 마땅한 삯을 준비해야 합니다.

 

또한 19절을 보면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장로와 목사에 대한 치리에 관한 것인데, 신명기 1915절을 보면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라고 말하고, 민수기 3530절에도 사람을 죽인 모든 자 곧 살인한 자는 증인들의 말을 따라서 죽일 것이나 한 증인의 증거만 따라서 죽이지 말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이와같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서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었어야 죄를 판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로에 대한 고발도 두세 증인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악의적인 고발과 근거없는 비난으로부터 장로를 보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20절을 보면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장로들의 죄가 명백하게 드러난 경우를 의미하는데, 이런 경우에는 대충 넘어가지 말고 공개적으로 징계를 해서 다른 사람들도 동일한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확실히 고증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주기철 목사가 자신의 은사이자 자신을 평양 산정현 교회로 청빙했던 조만식 장로를 향해 예배 시간에 지각한 것을 공개적으로 꾸중하였고, 조만식 장로가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종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지각을 했다면 그대로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장로의 직분은 다른 성도들에게 본이 되어야 하는 막중한 책임과 헌신이 요구되는 직분입니다. 그래서 작은 실수도 쉽게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목사와 장로들을 존경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일반 성도들은 잘 알지 못하지만 목사와 장로님들이 감당해야 하는 헌신과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 모릅니다. 어쨌든 이와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바울은 디모데를 향해 악의적인 비방과 모함을 받는 경우에는 장로들을 지키고 보호해야 하지만, 반대로 장로들이 잘못을 행할 경우에는 쉬쉬하면서 넘어가지 말고 공개적으로 책망해서 공동체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다스리는 장로들을 존경하게 하소서.

2.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의 가치를 존중하게 하소서.

3. 교회를 섬기는 장로님들이 예배와 기도와 말씀과 찬양에서 모든 성도들의 본이 되는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역사 1】 마태복음 16:13~20, 교회의 시작-이 반석 위에

디모데전서 3:8~10, 선한 일을 사모하는 사람 3

【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역사 2】 사도행전 11:25~30, 그리스도인

히브리서 3:7~11,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사도행전 5:12~42, 능욕받기에 합당한 자가 되는 기쁨

디모데전서 3:1~3, 선한 일을 사모하는 사람 1

디모데전서 1: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야고보서 1:1~3,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데살로니가후서 3:7~9,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데살로니가후서 3:3, 미쁘신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