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역사 3】 요한복음 9:22, 12:42, 16:2, 얌니아 회의-구약 성경의 확정과 기독교의 출교
【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역사 3】 요한복음 9:22, 12:42, 16:2, 얌니아 회의-구약 성경의 확정과 기독교의 출교
9: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12:42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16: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오늘은 [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역사] 세 번째 시간인데, 첫 번째 시간에는 ‘교회’가 ‘이 반석 위에’ 즉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 고백이 교회의 기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시간에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믿음에 대해 알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들, 그리고 이웃과 성도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로 기독교 탄생에서 결정적인 분수령이 되었던 ‘얌니아 회의’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하는데, 얌니아 회의는 AD 90년에 얌니아(Jamni)에서 열렸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두가지 결정을 하게 되는데, 하나는 구약의 정경을 확정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출교한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유대교와 기독교가 완전히 분리되면서 기독교가 독립적인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사람들이 급속히 늘어나자 유대인들은 위협을 느끼고 그리스도인들을 배척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이 볼 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또다른 하나님으로 받아들인다고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쨌든 그 중심에 유대교 최고의 랍비였던 요하난 벤 자카이(Yohanan Ben Zakai)가 있었는데, 요하난 벤 자카이는 바리새파의 대제사장으로 AD 66~70년 열심당원이 주도한 유대의 반란이 실패할 것을 예견하고 유대교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당시 로마 진압군 사령관이었던 베스파시안 장군을 만나 최소한의 유대교 랍비의 존속을 허락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욥바 남동쪽 20킬로미터 지점, 지중해 동쪽 6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야브네’(Japheth/Yavne) 혹은 ‘얌니아’(Jamnia)라는 소도시로 대거 이주하였는데, 이렇게 얌니아에 모인 율법학자들은 율법 학교를 세우는 것과 종교 생활에 대한 보장을 허락받으면서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된 후 많은 유대교 율법학자들이 활동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사실 AD 70년에 있었던 유대 전쟁은 성전과 제사장 중심의 종교에서 회당과 말씀을 가르치는 랍비 중심의 종교로 변화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직전에 누가복음 21장 20, 21절에서 예수님께서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치라는 말씀에 따라 예루살렘을 떠나 요단강 동편의 ‘펠라’와 ‘페트라’로 피신하였습니다. 그래서 전쟁의 위협과 유대인들의 간섭과 방해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인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당시 예루살렘에 있었던 그리스도인들은 거의 대부분 유대인들이었고,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들을 유대교의 한 분파나 메시아 운동을 하는 집단 정도로 여겼고, 이들 자신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유대교인들’ 혹은 사람들이 ‘나사렛파’(노쯔림, Notzrim)라는 유대교의 한 분파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사렛파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입장은 모두 동일하지 않았는데, 먼저 에비온파(Ebionite)는 예수님의 신성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은 민족성별 남녀노소의 차별 없이 또 율법에 상관없 이 오직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는 바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에비온파는 바울의 사도직을 부정할 뿐 아니라 바울이 이방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한 유대교의 배신자와 이단자로 보았기 때문에 바울 서신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큰 틀에서 예수님을 존경하며 따르는 대상으로 삼았지만 예수님을 섬김과 예배의 대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정반대로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인성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래서 예수님을 완전히 영적인 존재라고 주장하는 ‘영지주의’(Gnosticism)자들이 예수님의 ‘가현설’(Docetism)을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유대교 경전(24권) | ||
율법서 (Torah) | Bereshith(태초에), Shemoth(이름들), Wayiqra(그리고 그가 불렀다), Bemidbar(광야에서), Debarim(말씀들) | |
예언서 (Nebhim) | 전기예언서(4) | Yehoshua, Shofetim(판관들), Shemuel, Melakim(왕들) |
후기예언서(4) | Yeshayahu(이사야), Yirmeyahu(예레미야), Yehezqel(에스겔), Tere Asar(열둘) | |
성문서 (Ketubhim) | 시와 지혜(3) | Tehillim(찬미들), Iyyob(욥), Mishle(잠언들) |
다섯 두루마리(5) | Ruth, Shir Hashirim(노래들 중의 노래), Qoheleth(설교자-전도서), Ekah(어떻게-애가), Ester | |
Daniel, Ezra-Nehemyah, Diber Hayamin(역대기들)(3) | ||
어쨌든 유대 전쟁의 결과 유대교인들 중에서 열심당파는 맛사다 전투에서 모두 사망하였고 성전 멸망과 함께 사두개파도 사라지고, 엣세네파도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다만 얌니아에는 바리새파 사람들만 남아서 유대교의 재건을 이루려고 하였는데, 이때 그리스도인들은 펠라와 페트라를 중심으로 신앙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잠재적인 위험 요소로 보았기 때문에 점차 회당에서 그리스도인들을 파문시키기 시작하였는데, 이때가 요한복음이 기록되던 85년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출교’라는 표현들이 여러차례 나오는 이유가 이와같은 시대적인 상황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요하난 벤 자카이는 AD 90년경에 랍비들을 불러 모아 얌니아에 있던 ‘예쉬바(Yeshiva)’라는 유대인 랍비들의 아카데미에서 구약의 정경(正經)을 결정하는 문제를 논의하여 마침내 구약 성경의 정경을 확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얌니아 회의는 정경 목록을 새롭게 확정한 것이라기 보다는 BC 400년경에 (일설에 의하면 에스라에 의해) 일차적으로 확정된 목록을 그대로 재확인한 것이었습니다. 현재 개신교에는 히브리어 경전 24권을 70인역에 따라 39권으로 나누었고, 천주교는 382년 로마 주교 회의에서 헬라어 70인역의 구약 성서에 있는 외경을 포함한 46권을 모두 정경으로 인정하였습니다. 그리고 트리엔트 공의회(1546년)에서 다시 확인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칠십인역 LXX | 제1경전-구약성서(39권) |
제2경전(외경)-토비트, 유딧, 지혜서, 집회서, 바룩, 마케베오 상하 |
【함께 드리는 기도】
1. 고난과 박해 속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잊지 않게 하소서.
2. 참된 믿음과 신앙을 지켰던 초대 교회 성도들의 신앙을 본받게 하소서.
3. 인종주의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기독교의 보편주의적인 신앙을 알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