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24일(주일)】 성령강림절 후 열 일곱 번째 주일(출애굽기 16:2~15, 요나 3:10~4:11)


2023924(주일)성령강림절 후 열 일곱 번째 주일

본문출애굽기 16:2~15, 요나 3:10~4:11

제목원망 중에 얻은 깨달음

 

 조금 전에 아이들과 함께 요나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았는데요, 요나서 41절을 보면,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But Jonah was greatly displeased and became angry.)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향해 성을 냈다는 표현이 없는데, 요나는 하나님의 결정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그것도 매우(רָעָ֣ה) 싫어했다고 말하는데 매우는 문자적으로 큰 악을 저질렀다는 뜻입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43절을 보면,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Now, O LORD, take away my life, for it is better for me to die than to live)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진짜 죽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더 이상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 수 없다는 절망감의 표현입니다. 어쨌든 요나는 하나님을 향해 이와같은 막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원래 요나의 성격이 나빴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요나가 이렇게 원망과 불평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용서하시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42절을 보면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O LORD, is this not what I said when I was still at home? That is why I was so quick to flee to Tarshish. I knew that you are a gracious and compassionate God, slow to anger and abounding in love, a God who relents from sending calamity.)라고 말하였습니다.

 

사실 이 말은 요나가 직접 했던 말이 아니라 출애굽기 346, 7절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 하셨던 말씀을 인용한 것인데, 요나는 스스로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했습니다. 그런데도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용서가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치 비꼬는 것처럼 이미 하나님의 섭리로 니느웨를 구원하기로 하셨는데 자기를 보내신 이유가 뭐냐고 따져 물었던 것입니다.

 

사실 원망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14절을 보면,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Do everything without complaining or arguing)고 말씀하고, 고린도전서 1010절에도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And do not grumble, as some of them did--and were killed by the destroying angel.)고 말씀합니다.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바람직하고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성경에서 원망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이유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근원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고, 어느 누구도 이 세상에서 완전히 만족한 삶을(원망이 없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원망불평을 반복하게 되는데, 이런 점에서 원망은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원망으로 번역되는 단어를 찾아보면 ‘luwn’()틀루나(tluwnah)’인데, ‘luwn’() ‘lodge, pass the night’라는 단어에서 비롯되었고, 틀루나(tluwnah)’중얼거린다, murmuring’는 뜻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원망이라는 단어가 lodge와 중얼거림에서 유래하게 된 것은 고대 시대에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잠을 잘 때 겪는 불편함과 관계가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좋은 호텔에서 잠을 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불편한 점들이 많았을 것이고, 그래서 나그네가 집을 그리워하면서 중얼거리는 말을 원망이라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은 낙원을 잃어버린 존재, ‘하나님의 품을 떠나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원망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다면 원망을 하더라도 요나와 같은 원망을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원망이 원망으로 끝나지 않고 원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요나의 원망을 주의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그런데 요나는 어떻게 원망을 했을까요?

 

3.

 

사실 요나의 원망에는 원망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나의 원망에는 하나님에 대한 질문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 선지자인데, 요나가 던진 질문은 무엇이었을까요?

 

당시 니느웨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의 수도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입장에서 니느웨는 반드시 멸망 당해야 하는 원수의 도시였습니다. 처음에 요나가 니느웨로 가지 않고 도망친 이유도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에 돌이켜서 니느웨로 가기는 갔지만 요나는 여전히 니느웨가 멸망당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면 이스라엘의 원수인 니느웨를 심판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를 심판하지 않고 오히려 용서하셨습니다. 요나의 입장에서 이것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왜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멸망하지 않으실까? 하나님께서 원수의 도시를 멸망시켜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식의 질문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나의 원망에도 불구하고 요나를 책망하는 대신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려 주셨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면, 요나가 기어코 니느웨의 멸망을 눈으로 지켜보려고 성읍 동쪽에 나가서 성을 바라보면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가 너무 뜨거워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박넝쿨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6, 크게 기뻐하였’(Jonah was very happy about the bush)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벌레를 보내서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니까 8,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It is better for me to die than to live)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49절을 보면,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But God said to Jonah, "Do you have a right to be angry about the vine?")라고 질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가 스스로 깨닫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요나는 이때까지도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I do, he said. I am angry enough to die.)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정말 요나는 겁이 없었습니다. 이 정도로 하나님께 대들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어쨌든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했던 질문의 핵심은 네가 가장 아끼는 것은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요나에게 소중한 것은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는 박넝쿨이었습니다. 이 박넝쿨은 요나가 찾아낸 것도 아니고 심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요나가 있던 곳에서 갑자기 자라서 하룻만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룻밤 지난 후에 벌레가 박넝쿨 밑둥을 갉아 먹어버리자 무성했던 박넝쿨이 시들어버렸습니다. 어제는 박넝쿨 덕분에 시원했지만 박넝쿨이 시들어 버리고 뜨거운 동풍까지 불어오니 요나가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박넝쿨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셨는데, 410, 1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But the LORD said, "You have been concerned about this vine, though you did not tend it or make it grow. It sprang up overnight and died overnight. But Nineveh has more than a hundred and twenty thousand people who cannot tell their right hand from their left, and many cattle as well. Should I not be concerned about that great city?)

 

요나는 박넝쿨을 아꼈지만 니느웨 성과 그 사람들을 아끼는 마음은 갖지 못했습니다. 요나에게 박넝쿨은 필요하고 귀한 것이었지만 니느웨 사람들의 생명은 그보다 못한 것이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였지만 하룻밤에 났다가 다음날 시들어버린 박넝쿨보다 니느웨 사람들의 생명을 하찮게 생각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가장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가장 우선순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누구에게나 아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끼는 것이 요나의 박넝쿨인지, 아니면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 소중한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요나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구원을 가르쳐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만약 요나서가 없었다면 우리는 구약 성경에서 거의 유일하게 기록되어 있는 유대인들의 한계를 뛰어넘어 온 세상과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원망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구원하는 하나님이지만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된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뛰어넘어 온 세상과 인류를 사랑하는 하나님임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요나는 원망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4.

 

오늘 또다른 본문이 출애굽기 16장인데, 여기에 나오는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애굽기 162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In the desert the whole community grumbled against Moses and Aaron)하였습니다. 한 두 사람이 원망이 아니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한꺼번에 원망했습니다. 왜냐하면 3절을 보면 주려 죽게 하는도다라는 말처럼 생존에 대한 위기를 겪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집단으로 원망을 했지만 하나님은 심판하거나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4절을 보면,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I am going to rain bread from heaven for you, and each day the people shall go out and gather enough for that day)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저녁이 되자 메추라기 떼가 날아왔고,(13) 아침에는 이슬이 내렸는데 이슬이 걷힌 뒤에 작은 알갱이들이 땅에 덮여 있었는데 그것이 만나’(man hu)였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엇인가(만나)를 먹을 양식으로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도 하나님은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질책하거나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원망하는 사람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 속에 하나님에 대한 질문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 속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엇으로 먹이고 입히시는 분입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은 무엇을 양식으로 삼으면서 살아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만나로 대답해 주신 것인데, 만나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먼저 4절을 보면,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I will rain down bread from heaven for you. The people are to go out each day and gather enough for that day. )라고 말씀하셨는데, 만나를 그냥 주신 것이 아니라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두’(each day and gather enough for that day) 도록 하셨습니다. ‘일용할 양식은 한 사람이 하루를 살기 위해 충분하고 필수적인 양식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16절을 보면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Each one is to gather as much as he needs.)라고 말씀하셨는데, 각 사람이 먹을 만큼만 거두라는 것은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욕심부려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18절을 보면,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he who gathered much did not have too much, and he who gathered little did not have too little. Each one gathered as much as he needed)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필요한만큼 공평하게 나눠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19절을 보면,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No one is to keep any of it until morning)고 말씀하셨습니다. 만나는 어떤 특정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어느 누구도 하늘을 독점할 수 없듯이 만나도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자기만을 위해 저장할 수 없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남겨두지 말고 나누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께서 만나를 먹을 것으로 주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음식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만나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이집트를 떠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5.

 

설교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인간은 모두 원망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왜냐하면 결핍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원망은 자기 자신을 파괴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을 파괴합니다. 예를 들면 민수기 16장에 나오는 고라당의 반역 사건이나 민수기 21장에서 에돔을 우회하는 것에 대해 불평하자 불뱀으로 징계하셨던 사건처럼 욕심 때문에 생겨난 원망은 멸망과 심판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원망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꼭 해야만 하는 원망도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질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기 위한 원망은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신앙 생활은 제대로원망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속상하고 답답하면 그 마음으로 하나님께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와같은 질문이 담긴 원망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원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원망 속에서도 만나를 주시는 하나님을 알고, 원망 속에서도 천국의 비밀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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