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10일(주일)】 성령강림절 후 열 다섯 번째 주일(출애굽기 12:1~14, 로마서 13:8~14)
【2023년 9월 10일(주일)】 성령강림절 후 열 다섯 번째 주일
【본문】 출애굽기 12:1~14, 로마서 13:8~14
【제목】 여호와의 유월절
1.
지난 주 화요일부터 우리 아이들이 새로운 학년,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한국에서는 3월부터 새로운 학기, 학년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유럽과 북미(캐나다, 미국) 지역에서는 9월부터 새로운 학년이 시작됩니다. 처음에 9월 학기제를 시작하게 된 것은 ‘바쁜 농사철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어쨌든 캐나다에 살다보면 9월부터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고, 그래서 8월 말부터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은 ‘back to school’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출애굽기 12장 2절을 보면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This month shall mark for you the beginning of months; it shall be the first month of the year for you.)라고 말합니다. 고대 유대인들의 새해는 가을부터 시작되는데, 하나님께는 새해의 시작을 ‘이 달’로 삼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이 달’은 ‘아빕월 or 니산월’, 현재의 3~4월경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달력’을 바꾸도록 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달력을 주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출애굽’(Exodus)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출애굽은 ‘ἔξοδος(Ex-Hodos)’로 ‘departure, exit, going out’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길을 떠나서 새로운 길로 들어가는 것’이 출애굽인데, 이집트를 탈출한 사건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출발점이기 때문에 새해의 시작으로 삼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출애굽 사건에서 가장 클라이맥스에 해당되는 부분이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인데, 출애굽기 12장에는 아홉 번째 재앙이 끝나고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이 시작되기 전에 유월절과 무교절의 유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출애굽기 12장에는 출애굽 사건에서 가장 결정적인 의미가 있는 열 번째 재앙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어서 출애굽기 전체에서 출애굽의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로운 시작, 새로운 출발’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새로운 출발을 하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2.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로운 시작,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서는 준비물이 필요한데, 가족 수대로 양을 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씀합니다.
출애굽기 12장 3절을 보면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they are to take a lamb for each family, a lamb for each household.)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어린 양(שֶׂ֥ה)’은 문자적으로 ‘양이나 염소’가 모두 가능합니다. 그래서 5절을 보면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you may take it from the sheep or from the goats)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린 양’은 성경에서 ‘양’이 지니는 상징적인 의미와 관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 53장 7절을 보면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He was painfully abused, but he did not complain. He was silent like a lamb being led to the butcher, as quiet as a sheep having its wool cut off.)라고 말하는 것처럼 ‘어린 양’은 메시야를 예표합니다. 그래서 출애굽을 하기 전에 ‘어린 양’을 잡는 것은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준비하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1년 된 양이나 염소를 먹는데 필요한 인원이 최소한 10명 정도였던 것을 감안 한 것입니다. 그래서 가족 구성원이 함께 유월절을 준비하게 하신 것인데, 왜냐하면 출애굽에서 ‘가족’은 단순히 ‘혈연 공동체’가 아니라 ‘신앙 공동체’라는 것을 가르쳐주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4절을 보면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사람 수를 따라서 하나를 취하며 각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에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If a household is too small for a whole lamb, it shall join its closest neighbor in obtaining one; the lamb shall be divided in proportion to the number of people who eat of it.)하라고 말합니다.
가족의 수가 부족하거나 가족 중에 노인이나 어린아이처럼 먹는 양이 많거나 적은 사람이 있으면 그것도 정확히 계산해서 양을 잡으라는 것입니다. 가족 숫자가 부족하면 이웃을 통해 보충해서 충분한 숫자가 되게 하라는 것은 그만큼 출애굽 사건에서 ‘공동체’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면 ‘어린 양’이 있어야 하고, 그 양을 온 가족이 ‘함께’ 먹어야 합니다. 이것은 크게 두가지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가족이 ‘함께’ 먹는 것은 신앙은 ‘공동체’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또한 가족이 함께 ‘어린 양’을 먹는 것은 ‘어린 양’이 메시야를 상징하는 것처럼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없으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 사건은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함께 신앙 생활을 시작하는 공동체가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8절을 보면 또 다른 음식이 나오는데,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They shall eat the lamb that same night; they shall eat it roasted over the fire with unleavened bread and bitter herbs.)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음식은 ‘무교병과 쓴나물’입니다. ‘무교병’은 ‘누룩을 넣지 않고 구운 빵’인데 무교병을 먹는 것은 빵을 만들 때 누룩을 넣고 부풀릴 시간이 없었던 출애굽의 긴박한 상황을 나타냅니다. 또한 ‘누룩’은 효소의 분해와 발효 과정에서 썩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누룩이 없는 빵’을 먹는 것은 ‘부패와 타락’을 제거하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제사에서 누룩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고, 또 마태복음 16장 6절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Watch out! Guard against the yeast of the Pharisees and Sadducees.)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위선과 외식을 누룩이라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5장 6~8절을 보면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Stop being proud! Don't you know how a little yeast can spread through the whole batch of dough? Get rid of the old yeast! Then you will be like fresh bread made without yeast, and that is what you are. Our Passover lamb is Christ, who has already been sacrificed. So don't celebrate the festival by being evil and sinful, which is like serving bread made with yeast. Be pure and truthful and celebrate by using bread made without yeast.)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누룩이 없는 사람, 그래서 부풀려서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순전하고 진실한 사람이라 것입니다.
또한 ‘쓴 나물’(bitter herbs)을 먹으라고 하셨는데, ‘쓴 나물’(מְרֹרִ֖ים)이 어떤 나물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출애굽기 1장 14절을 보면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that their lives were miserable. The Egyptians were cruel to the people of Israel and forced them to make bricks and to mix mortar and to work in the fields.)고 말할 때 ‘괴롭게 하다’와 어근이 같습니다. 그래서 ‘쓴 나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겪은 종살이의 가혹한 고통을 기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출애굽 이전에도 유월절과 비슷한 절기가 유목민들에게 있었습니다. 유목민들은 우기가 끝나고 건기가 되어서 새로운 목초지를 구하러 떠날 때 천막을 걷고 이동을 하게 되는데, 그 전에 ‘이동을 위한 의식’을 행했습니다.
그런데 유목민들의 단순한 연례 축제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역사적인 기념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의 떠남을 이스라엘의 진정한 출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떠나는 것은 유목민들이 삶의 터전을 옮기는 연례적인 행사와는 다른,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와같은 떠남과 새로운 출발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놀라운 구원 역사의 시작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4절을 보면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This day shall be a day of remembrance for you. You shall celebrate it as a festival to the LORD; throughout your generations you shall observe it as a perpetual ordinance.)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9월은 새로운 출발, 새로운 시작을 하는 계절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출발은 시간이 되었다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시작을 하려면 준비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누룩을 제거하고, 쓴나물을 먹는 것처럼 고통과 고난을 감내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앙적인 면에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는데, 신앙 생활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족 수대로’ 혹은 ‘이웃과 더불어’ 양을 나누어 먹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삶의 양식으로 삼을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출발, 출애굽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그런데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또 있는데, 11절을 보면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This is how you are to eat it: with your cloak tucked into your belt, your sandals on your feet and your staff in your hand. Eat it in haste; it is the LORD's Passover.)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급히 먹으라’는 말은 ‘전율, 서두름’을 나타냅니다. 왜 이렇게 서둘러서 정신없이 급히 먹으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떠날 때 떠나더라도 허리띠를 풀고 편안하게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리고 떠나면 좋을텐데, 왜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도록 하신 것일까요?
왜냐하면 급히 서둘러서 떠나지 않으면 제대로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인데,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동안 이집트에서 430년 동안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집트는 당시 세계 최고의 문화와 문명이 꽃피던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런 이집트를 고향과 조국으로 삼아서 살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집도 있었고, 가족과 함께 살면서 정이 들고 대대로 추억이 쌓였습니다.
그래서 그런 이집트를 떠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미련도 남고, 주저하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허리에 띠를 띠고 신발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잡고, 급하게 음식을 먹는둥 마는둥 하면서 서둘러서 급히 떠나도록 하신 것입니다. 미련을 갖지 말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19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기 전에 두 천사가 롯과 그의 아내를 도망치도록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롯의 아내가 소돔 성을 탈출해서 새로운 출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저하다가 기회를 놓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주한 것은 또 하나의 출애굽,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또 새로운 학년이 되는 자녀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는 것은 모두 출애굽의 기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환경에서 살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기회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누가복음 9장 62절에서 예수님께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Anyone who starts plowing and keeps looking back isn't worth a thing to God's kingdom!)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급히 먹으라’고 명령하신 것은 ‘뒤를 돌아보거나 미련을 갖지 말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는 의미에서 격려를 해 주신 것입니다.
4.
설교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출애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에도 말씀드렸지만 ‘어린 양’입니다. 그런데 7절을 보면,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They shall take some of the blood and put it on the two doorposts and the lintel of the houses in which they eat it.)라고 말합니다. 사실 ‘유월절’이라는 말은 ‘passover’, ‘넘어간다’, ‘건너간다’는 의미입니다. 어린 양의 피가 있는 집에는 재앙과 심판이 ‘넘어간다, 지나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린 양의 피를 바르게 하고, 또 어린 양의 피가 있는 집에 재앙이 지나치게 하신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피를 바르는 것은 한마디로 ‘가린다, 대신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린 양의 피가 그 집에 있는 사람의 죄를 가리고, 대신하는 효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는 어린 양의 피를 발라서 인간의 죄를 가리도록 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말미암아 더 이상 어린 양의 피를 바를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죄를 가리고 대신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린 양의 피를 바르지 않는다고 해서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어린 양의 피를 바르는 것을 신약적으로 재해석해서 로마서 13장 12절에서 ‘빛의 갑옷을 입자’(put on the armor of light)라고 말하고, 14절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put on the Lord Jesus Christ)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어린양의 피를 바르는 것을 빛의 갑옷을 입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차 대전 후에 29년 동안 필리핀의 루방 섬에서 혼자서 전쟁을 계속했던 <오노다 소위>라는 사람이 있는데, 일본이 패망하고 2차 대전이 끝났으니 항복하라고 해도 오노다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직속상관이었던 타니구치가 가서 투항을 명령하자 겨우 투항했는데, 투항 당시 오노다는 일본군 복장을 그대로 갖추고 있었고 사격이 가능한 상태로 99식 소총을 정비해 놓고 500여발의 탄환과 대여섯개의 수류탄도 함께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미 29년 전에 전쟁은 끝났고 군복도 벗었어야 했지만 오노다는 군복을 그대로 입고, 정글 속에서 전쟁아닌 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지 않으면 이미 벗어버려야 할 낡은 옷을 여전히 입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자연을 보면 이미 여름의 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 입고 있습니다. 민감하게 때를 분별하여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어떤 계절을 살고 있고, 그래서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 지를 모를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밤은 이미 지나갔고, 낮이 왔습니다. 어둠이 지나갔고, 빛이 밝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빛의 갑옷,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입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옷은 어떤 옷일까요? 그것은 사랑으로 빚어진 옷입니다. 예수님의 옷은 오직 사랑으로 만들어진 옷입니다.
새로운 시작, 새로운 출발은 이와같은 사랑의 옷을 입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쓴나물을 기억하면서 달려갑시다. 이것이 우리가 시작해야 할 하나님의 유월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