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2일(주일)】 성령강림절 후 스물 한번째 주일(출애굽기 33:12~23, 살전 1:1~10)


 20231022(주일)성령강림절 후 스물 한번째 주일

본문출애굽기 33:12~23, 살전 1:1~10

제목하나님과 친밀한 성도

 

오늘 설교 제목이 하나님과 친밀한 성도인데, 사실 2023년 우리 교회 표어가 하나님과 친밀한 성도가 되게 하소서입니다. 그런데 이 표어대로 그동안 하나님과 친밀한 삶을 사셨습니까?

 

성경에서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모세인데, 출애굽기 3311절을 보면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Thus the LORD used to speak to Moses face to face, just as a man speaks to his friend.)하셨습니다. 모세가 얼마나 하나님과 친밀했는지 친구처럼 하나님과 대화를 했다는 것입니다.

 

1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And the LORD said to Moses, I will do the very thing you have asked, because I am pleased with you and I know you by name)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주어로 이름으로 너를 안다’(I know you by name)는 표현이 여기서 유일하게 나옵니다. 그리고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다’(I am pleased with you)는 말씀도 모세노아 이외에 이런 말씀을 들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랑과 인정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14절을 보면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The LORD replied, My Presence will go with you, and I will give you rest.)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친히얼굴로’(face to face)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직접 가신다는 의미이고, ‘쉬게 하리라’(I will give you rest)는 것은 편하게 하겠다, 걱정하지 말아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직접 모세와 함께 갈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모세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친구처럼 하나님과 대면하여 대화하고, 모세의 이름을 기억하고 인정하여 주셨고, 모세에게 걱정하지 말고 안심하라, 너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들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친구처럼 친밀하게 지낼 수 있을까요?

 

2.

 

먼저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함께 동역하는 사람인데, 12절을 보면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Then Moses said to the LORD, "See, You say to me, 'Bring up this people!' But You Yourself have not let me know whom You will send with me.)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나와 함께 보낼 자동역자를 의미합니다.

 

모세는 지금까지 아론과 함께 동역하였습니다. 말을 잘 하지 못하는 모세에게 모세를 대신해서 백성들과 파라오에게 말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아론이 아닌 다른 동역자를 보내달라고 말하는 이유는 지난 주, 출애굽기 32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론의 잘못은 금송아지를 만든 것 뿐만 아니라 마지막까지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출애굽기 3224절을 보면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Then I asked them to bring me their gold earrings. They took them off and gave them to me. I threw the gold into a fire, and out came this bull.)라고 말했습니다. 아론은 자신의 잘못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불에 던졌더니 송아지가 나왔다’(I threw the gold into a fire, and out came this bull.)면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모세가 얼마나 크게 실망했을지 짐작이 가는데, 더 큰 문제는 아론의 핑계와 변명이 백성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3225절을 보면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Moses knew that the people were out of control and that it was Aaron's fault. And now they had made fools of themselves in front of their enemies.)고 말합니다.

 

여기서 방자하게 행하다는 말은 제멋대로 날뛰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기는커녕 모세와 하나님을 향해 함부로 대들었습니다. 결국 지도자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3천명이나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재앙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고 약점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동역자를 보내주시는 이유는 서로의 약점과 단점을 보완하고 보충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이렇게 서로 동역자의 관계입니다. 교회에서도 주님의 선한 사역을 함께하는 동역자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 동역자에게 꼭 필요한 것은 진실함입니다. 왜냐하면 실력이나 능력이 부족한 것은 보충해서 채우면 되지만 진실하지 못한 사람과는 함께 동역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론은 거짓말과 핑계를 대면서 책임을 회피하려고 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함께 동역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 새로운 동역자를 보내달라고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1절을 보면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Paul, Silvanus, and Timothy, To the church of the Thessalonians in God the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Grace to you and peace.)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의 공동 저자로 실루아노디모데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단순히 이들을 추천하거나 격려하려는 의미가 아닙니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를 시작할 때부터 함께 수고하였고, 수많은 고초를 겪으면서 함께 동역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모세에게 남다른 뛰어남이나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모세에게도 실수와 잘못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세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진실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르게 인도하려는 뜨거운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와같은 모세의 진실한 모습을 인정해 주셔서 동역자를 보내주셨고, 또 친히 동역자가 되어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은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 함께 교회를 섬기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진실함과 성실함으로 주님의 교회를 함께 세워가는 동역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또한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인데, 18절을 보면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Moses said, "Show me your glory, I pray.")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이런 기도를 하게 된 이유는 16절을 보면,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How will anyone know that you are pleased with me and with your people unless you go with us? What else will distinguish me and your people from all the other people on the face of the earth) 라는 말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한다는 것을 온 세상이 알 수 있도록 확실한 보증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기도에 대해 하나님은 20,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But, he said, you cannot see my face, for no one may see me and live)라고 대답하셨습니다. 23절에도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Then I will remove my hand and you will see my back; but my face must not be seen.)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얼굴은 볼 수 없고 등만 볼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달라는 모세의 기도를 거부하신 것일까요?

 

실제로 많은 신학자들은 이 구절을 아무리 뛰어난 모세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얼굴은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경우에도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하신 하나님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해석합니다. 물론 인간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고, 하나님에 대한 종합적인 지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모세와 하나님은 친구처럼 대면하여(face to face) 이야기 하였고, 이름으로도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감추려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나님을 가장 잘 보여주시려고 하나님의 등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얼굴은 보여줄 수 없다고 냉정하게 거절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특별히 사랑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을 더 잘 알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의 얼굴이 아니라 하나님의 등을 보여주신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먼저 등을 보여준다는 것은 무방비 상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신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등을 보이셨다는 것은 그만큼 모세를 신뢰한다는 의미합니다.

 

또한 등을 보여준다는 것은 지나간 발자취를 보여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19절을 보면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I will make all my goodness pass before you)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선한 것토브(Tov)’라는 단어의 명사형인데,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신 단어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선한 것들을 보는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려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 세계를 보고,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발자취를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등을 보아야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직접 하나님을 보려고 하였고, 하나님을 만지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파악되는 분이 아닙니다. 그렇게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나님을 보면 죽을 수 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존재이지 하나님을 영광을 보면서 하나님을 평가하거나 구경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전서 15절에서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because our message of the gospel came to you not in word only, but also in power and in the Holy Spirit and with full conviction; just as you know what kind of persons we proved to be among you for your sake.)고 말합니다.

 

바울과 동역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라고 말하는데, 능력성령의 능력으로 사람의 인격과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성령님의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폭발력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성령능력이 나타나는 근거가 성령 하나님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확신충만, 풍부를 뜻합니다.다시 말해서 바울과 동역자들은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때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과 발자취를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5절 하반절을 보면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just as you know what kind of persons we proved to be among you for your sake.)다고 말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등을 보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깨달으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았던 것처럼 복음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삶의 발자취를 보면 그 복음이 진짜 복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동역자들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바울과 동역자들이 어떤 사람을 살았는지 그들의 등을 보라고 말한 것입니다.

 

4.

 

설교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친밀한 성도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어떻게 동역자가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길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교회를 함께 섬기는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진실함과 성실함으로 교회를 세우는 참된 동역자, 믿을 수 있는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교회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동역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과 동역할 수 없고, 하나님과 친밀한 성도의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발자취를 기억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감히(건방지게) 나의 얼굴을 보려고 하느냐라고 질책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할 때 하나님을 가장 잘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의 발자취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19절을 보면 은혜 베풀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I will be gracious to whom I will be gracious, and will show mercy on whom I will show mercy)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어떤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지를 알려주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등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말씀속에는 하나님께서 걸어가신 발자취, 구원의 역사, 섭리, 은혜와 긍휼과 자비의 발걸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등에 새겨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 하나님과 친밀한 성도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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