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4:6~8,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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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전서 4:6~8,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6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바울은 디모데전서 4장에서 믿음에서 떠난 사람들, 양심이 화인을 맞은 것처럼 무감각해진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전하는 거짓된 가르침 대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6절을 보면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고 말합니다. ‘이것으로’라는 것은 바울이 디모데전서 4장 1~5절에서 언급한 내용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형제’는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교회’안에서 함께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형제, 자매’를 지칭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깨우치’(ὑποτιθέμενος)는 것은 ‘아래에 놓다’(laying before)는 뜻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시하다’(to suggest)는 의미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이 전하는 교훈을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제시하여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이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일꾼’(διάκονος)은 ‘servant’인데, 3장 8절과 12절에서 ‘집사’로 번역된 단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어떤 특정한 직분을 지닌 사람을 지칭하기 보다는 기쁨으로 교회를 섬기는 모든 사람들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것은 이들이 좋은 일꾼이 되어 교회를 섬기는 것이 최종 목표가 아니라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아서 계속해서 성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믿음의 말씀’은 기독교 진리의 참된 복음을 나타내고, ‘좋은 교훈’은 ‘거짓된 교훈,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과 대조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교훈들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와같은 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을 ‘네가 따르’고 있다고 말합니다. ‘따른다’는 것은 ‘어떤 일에 열중하다, 바싹 따르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양육을 받는다’는 것은 ‘기르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디모게가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할머니를 통해 믿음의 양육을 받아서 하나님의 선한 일꾼이 된 것처럼 다른 성도들도 이렇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7절을 보면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는 그리스도의 선한 일꾼이 되기 위해 디모데가 해야 할 일, 그리고 ‘형제’들이 알아야 하는 것을 나타내는데, ‘망령되다’는 것은 1장 9절에서도 사용된 단어인데, ‘가다’와 ‘문지방’의 합성어로 ‘거룩한 곳을 범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허탄한 신화’는 ‘늙은 노파가 어린아이들에게 아무 뜻도 없이 이야기 하는 것’(old wives' tales, NIV)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1장 4절에서 언급하였던 ‘신화와 끝없는 족보’와 같은 이단들의 주장을 나타냅니다.
바울은 이와같은 유대인들의 신화와 족보를 버리고 대신 ‘경건(εὐσέβειαν)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고 말합니다. ‘경건’은 ‘piety (towards God), godliness, devotion, godliness’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8절에 나오는 ‘육체의 연단’과 비교되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연단’(γύμναζε)한다는 것은 ‘to exercise naked’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인데, 왜냐하면 당시 헬라에는 달리기와 격투와 같은 운동 경기를 할 때 옷을 벗고 경기를 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바울은 디모데로 하여금 ‘경건을 연단’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러면서 8절을 보면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말하는데, 왜 경건의 연단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말하고 있는데, ‘육체의 운동’을 하는 것도 약간의 유익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육체의 연단’은 육체를 단련하기 위한 운동 뿐만 아니라 형식적인 신앙 행위 즉 철야 기도, 금식 기도와 같은 것들도 포함하는 말입니다.
이런 연습과 연단은 엣세네파에서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던 규칙이었습니다. 물론 이와같은 훈련도 약간(잠시동안)의 유익은 있습니다. 하지만 경건의 삶을 살아가는 것과는 비교가 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경건한 삶은 ‘금생과 내생’ 즉 ‘현세의 생명 뿐만 아니라 내세의 생명’까지도 약속해 주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경건한 삶은 현재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내생에서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시 동안의 유익을 주는 육체적인 삶과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으로 양육하고, 양육을 받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게 하소서.
4. 육체의 연단 뿐만 아니라 경건의 삶을 범사에 살아가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