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3:4~7, 선한 일을 사모하는 사람 2
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바울은 계속해서 ‘감독의 자격과 조건’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4절을 보면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번째 공동체는 교회가 아니라 ‘부부, 가정’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가정 공동체는 다른 모든 공동체의 근본이고 기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감독의 자격과 조건을 말할 때 ‘집’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집’(οἴκου)은 건물이 아니라 ‘가정’(family)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특히 ‘다스린다’(προϊστάμενο)는 말이 ‘pro(before)+histemi(to stand)’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가정을 다스리는 것’은 ‘앞서서 행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부모들은 말로 자녀들을 가르치려고 하지만 자녀들은 부모의 ‘말’이 아니라 부모의 ‘삶과 행동’을 본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겉으로 번지르르한 말을 하는 사람이 정작 자녀들 앞에서는 꼼짝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왜냐하면 가정에서는 말과 행실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교회는 예배의 시작부터 장년 설교를 하기 전까지 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아이들 예배를 따로 분리하자고 말하기도 하지만, 부모님과 함께 자녀들이 예배를 드리는 경험은 신앙 교육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에게 성경에 대한 지식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6일 동안 가정에서 함께 생활하는 부모님들께서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모습을 직접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바울은 교회를 섬기는 사람은 먼저 자녀들로부터 신앙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5절을 보면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라고 부연해서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 괄호를 한 것은 이 구절이 앞 구절에 대한 설명을 위해 삽입한 내용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바울은 ‘교회’(ἐκκλησίας)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처음에는 ‘시민의 정치적 집회에 소집된 사람들’을 의미하는 단어였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이스라엘의 종교적 집회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다가 나중에는 ‘그리스도인들의 집단’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어로 ‘church’라는 단어도 헬라어 ‘κυριακός’(belonging to the Lord)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이렇게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교회’는 ‘건물’이나 ‘제도, 기구’가 아니라 ‘사람들의 모임, 관계’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돌보는 감독도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 성도들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가르치고, 훈련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장 기초적인 관계인 ‘가정’에서조차 신앙적인 가르침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 교회 공동체를 감독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6절을 보면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라고 말합니다. ‘새로 입교’(νεόφυτον, novice)했다는 말은 ‘새롭게 씨를 뿌렸다’는 뜻으로 최근에 개종해서 교회에 나온 사람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바울은 새로 입교한 사람에게 감독직을 맡기지 말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교만’(τυφωθεὶς) 때문에 마귀가 받는 정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교만’이라는 단어는 ‘연기에 싸이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확실한 소명과 삶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은 연기에 싸인 것처럼 아직 불확실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기가 사라진 후에 제대로 모습을 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귀’가 받는 정죄를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서 ‘마귀’(διαβόλου)는 하나님의 피조물로 창조되었지만 교만하여 타락한 천사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 입교한 사람에게 감독직을 맡기는 경우는 자칫 마귀의 타락처럼 스스로를 망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7절을 보면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고 말합니다. ‘외인’은 말 그대로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나타냅니다. 사실 당시 상황이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이었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외인들에게서 선한 증거를 얻는다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그 사람에게 대해 참된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도록 하는 것인데, 다시 말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거나 아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교회의 지도자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거나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교회 공동체 전체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가 선한 일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나’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믿음 안에서 날마다 성장과 성숙을 이루지 않으면 교회의 감독이 되는 것이 오히려 개인의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한 일’을 하기를 소망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받은 소명이 개인적인 소명에서 그치지 않고 거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객관적인 소명도 확인하고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가정에서 존경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충분한 훈련과 검증을 통해 성숙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신앙인으로 인정과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