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2:7~10,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는 스승이 되려면
디모데전서 2:7~10,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는 스승이 되려면
7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10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바울은 디모데에게 ‘기도’에 대한 교훈을 하면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를 해야 하는데, 특히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신 ‘중보자’이신 예수님께 기도를 드리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7절을 보면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었다고 말하는데, ‘이를 위하여’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대속물로 주셨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복음을 전파하고 사도로 세움’을 받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대속물로 주셨다는 사실을 전하기 위한 직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전파하는 자’라는 말은 ‘왕, 군주, 행정 장관, 총독, 군대 장관’ 등이 보내는 공식적인 통신문을 배달하거나 공공문서를 전달하고 기타 여러 가지 의무를 이행하는 ‘사자’(使者)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선포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사도’라는 말도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직분을 복음이신 예수님을 전파하고, 복음이신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보냄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모든 직분이 세워진 근본적인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자신의 권위를 높이거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복음이신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이와같은 목적을 상실하게 되면 직분을 세운 이유도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받았다면 그 직분을 세우신 목적을 잘 이루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어쨌든 바울은 이것이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바울이 이렇게 강력하게 자신의 직분에 대해 강조하는 이유는 에베소 교인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이 거짓 교사들의 영향을 받아서 바울의 사도적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7절 하반절을 보면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고 말합니다. 앞서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받았다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 직분에 대한 일반론적인 언급이었다면 ‘믿음과 진리 안에서’라는 것은 직분을 받게 된 내용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초대 교회에서 ‘사도’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에 함께 하였던 제자들을 국한하여 지칭하는 호칭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사도직이 많은 도전을 받게 되었는데, 바울은 자신이 받은 ‘사도직’의 근거가 바로 ‘믿음과 진리’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다고 말하는데 바울은 히브리인이요 엄격한 바리새인으로 태어났지만 동시에 다소에서 태어나서 이방인들의 문화와 언어에 익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으로부터 시작된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각자도 이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할 필요가 있는데, 우리는 모두 복음을 전해 받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는 ‘스승’으로 살아야 하는데, 이것은 목사나 교사에게만 국한된 사명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각자 누군가의 스승으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는 자녀들에게 스승이 되어야 하고, 직장과 삶의 현장에서 누군가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전하고, 보여주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스승’으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8절을 보면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각처에서’라는 것은 ‘모든 장소, 모든 곳’을 의미하는데 특히 공동번역에 나오는 것처럼 ‘어느 예배소에서나’라는 의미로 보면 예배의 장소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바울은 남자들에게 ‘분노와 다툼’이 없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 할 수 있는데, 문맥상으로 볼 때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배경은 이방인과 유대인의 불편한 관계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 그리스도인과 유대인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갈등과 다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갈등과 다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어떤 특정한 자세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손을 드는 것’은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드리고 항복을 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해서 갈등과 다툼이 일어나는 이유는 자기 주장을 하거나 이해관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고 하다가 생겨나는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약함을 내어놓고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이와같은 갈등과 다툼을 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9절을 보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남자들이 예배 처소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해야 하는 것처럼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어야 하는데, ‘단정하다’는 것은 ‘행동이 단정하고 질서가 잡힌’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소박함’은 ‘modesty’(겸손함), ‘고상함’, ‘예절바름’을 나타내고, ‘정절’(σωφροσύνης)은 ‘자기 절제, self-control’, ‘맑은 정신, sobriety’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당시에 여성들이 내면의 아름다움보다 외적인 화려함에 치중하는 것을 빗대어서 예배에 참석할 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해 신경을 쓰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를 과시하기 위하여 옷치장을 하는 것에 대해 지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와같은 것들보다 10절을 보면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선행’은 이웃을 위한 ‘자선 행위’를 나타내는데, 자신을 외모와 외향을 가꾸는 것보다는 내면의 풍성함을 이루는 것이 훨씬 더 아름답고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우리가 각자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알게 하소서.
2. 믿음과 진리 안에서 누군가의 스승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3. 분노와 다툼보다는 거룩한 기도를 드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4. 소박함과 정절과 단정함을 추구하게 하소서.
5. 선행을 통해 내면을 아름답게 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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