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2:11~15,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디모데전서 2:11~15,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11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12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의 가르침은 현대인들에게는 아주 곤혹스럽고 심지어는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이와같은 가르침은 자칫 신앙 공동체 내에서 여성을 비하하거나 차별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벨상 수상자인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는 이런 구절들로 말미암아 바울을 “여성의 영원한 원수(eternal enemy of women)”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바울이 이런 언급을 한 이유는 초대 교회 안에서 여성을 차별하라거나 차별하는 것을 당연시 하게 생각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초대 교회에서는 여성의 활동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이와같은 권면을 하게 된 이유는 당시 에베소 교회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와같은 상황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먼저 11절을 보면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앞서 8절에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라고 말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처소에서 남자들은 분노와 다툼 대신에 기도하라고 권면했는데, 여자들도 예배를 드리는 처소에서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순종’한다는 것은 교회의 법규와 질서,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조용히’는 ‘침묵’을 의미하는데, 바울이 ‘조용히’를 말한 이유는 아무 질문도 하지 말고 그냥 침묵하며 배우라는 말이 아니라 여성들이 빈둥거리며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을 험담하거나 참견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뜻과 관계가 있습니다. 실제로 디모데전서 5장 13절을 보면 ‘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 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조용히’는 ‘방해받지 않는다’는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성들도 배움에 있어서 방해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많은 경우에 생겨나는 분쟁과 갈등은 교회의 법규와 질서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생겨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마다 자기 목소리를 높이다 보면 겉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먼저 순종하면서 조용히 배우라고 권면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12절을 보면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 본문을 근거로 여성들에 대한 안수가 오랫동안 거부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가르침의 금지는 모든 여성들에 대한 일반적인 권면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18장 26절을 보면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고 말하는 것처럼 아굴라의 부인이었던 브리스길라가 아볼로에게 복음을 가르쳤다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은 여성들을 자신의 동역자라고 여러 서신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는데, (롬 16:2, 빌 4:2~4) 바울이 동역자라고 말하는 것은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과 설교를 포함하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이 ‘여자가 가르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유는 당시 에베소 교회의 상황과 관계가 있습니다. 에베소는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여성 사제들이 중심을 이루는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에 살고 있는 모든 남성들은 여성 사제들의 지배를 받으며 그들의 권위에 복종하는 독특한 종교 문화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와같은 영향으로 말미암아 초대 교회 안에서도 여성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남성을 지배하며 가르치는 것을 자신들의 특권이라고 생각하고, 심지어 성관계와 혼인, 자녀 출산을 포기하는 영지주의 이단 교리를 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4장 3절을 보면 바울이 이들을 향해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에베소 교회의 상황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에베소 교회가 아데미 신전처럼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여성들도 배워야 하지만 조용히 배우도록 하였고, 남성을 지배하거나 군림하도록 하지 않도록 하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를 13, 14절에서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당시 영지주의 가르침에 빠진 에베소 여성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인데, 영지주의자들은 여성을 생사의 근원, 우주의 어머니라고 말했고 신성한 창조의 진리가 여성 안에 있기에 여자를 찬미하고 경배하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여성이 남성보다 먼저 창조된 존재라고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와같은 잘못된 가르침에 대해 성경적 가르침을 정확히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5절을 보면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읽으면 여성의 출산이 구원의 조건처럼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여성들로 하여금 출산의 역할을 포기하게 하는 영지주의 가르침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사실 출산은 여성에게 목숨을 걸어야 할만큼 크고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해산을 통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해산은 분명히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영지주의자들은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와같은 가르침과 반대로 여성들에게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믿음과 사랑과 순결한 생활을 계속하면 구원의 길이 열린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본문에 나오는 말씀은 여성에 대한 비하나 차별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데미 신전의 영향을 받아 남자를 지배하려고 했던 에베소 교회의 여성들에게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남녀를 차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성과 여성은 모두 서로를 지배하려고 하거나 힘으로 억압하려고 하지 말고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복음의 진리를 배워야 합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게 하소서.
2. 다른 사람을 주관하거나 지배하려고 하지 않게 하소서.
3.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와 순리에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4.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