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3:13~15,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데살로니가후서 3:13~15,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13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14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15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3장에서 ‘떠나야’ 할 사람들(6절), 거리를 두어야 할 사람들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들은 게으른 사람들,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6절), 무질서하고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10절), 일하지 않고 일만 만들면서 참견하는 사람들(11절)이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이런 사람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바울의 가르침에 따라 건강하고 신실하게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향해 13절,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게으른 자들이 어떤 말로 참견을 하든지 흔들리지 말고 지속적으로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선을 행한다’(καλοποιοῦντες)는 것은 ‘좋은 일, 명예로운 일, 바른 일을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낙심하지 말라’(ἐγκακήσητε)는 것은 ‘시들다, 겁내다, 약해지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경건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게으른 자들로 인해 실족하는 일도 있었기 때문에 바르게 사는 것을 겁내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표현이 갈라디아서 6장 9절을 보면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이와같은 권면을 하게 된 이유는 신앙 공동체 안에서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있기 때문인데, 사실 이와같은 현상은 요즘에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열심을 내서 헌신하는 사람들의 본을 받아서 함께 선한 일을 감당하려고 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적당히’ 신앙 생활을 하려고 하거나, 이런 저런 핑계를 대는 사람들을 보면서 실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신앙 공동체의 수준이 그리스도 예수의 푯대를 향해 달음박질하면서 점점 성장하기는커녕 오히려 하향평준화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일하지 않는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라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선을 행하는 과정에서 겁내거나, 약해지지 말라고 권면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14절을 보면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해 여러 가지를 권면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교훈을 ‘순종하지 않는’ 사람, 즉 ‘듣지 않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것은 단순히 바울이라는 개인에 대한 불순종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의 교훈과 가르침은 주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향해 강력하게 경고하는 것인데, 먼저 이렇게 불순종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먼저 ‘지목하여 사귀지 말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불순종하는 자들과 교제를 끊으라는 말인데, ‘지목한다’(σημειοῦσθε)는 말은 ‘σημεῖον’(a sign, indication, mark)에서 비롯된 단어입니다. 그래서 영수증이나 공문서에 서명한다는 의미로 흔히 사용되는 말이고, 문자적으로 직역을 하면 ‘불순종하는 자에게 표를 붙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목한다’는 것은 어떤 사람을 단순히 가리킨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런 자들의 행동을 주목하여 보고 그들의 잘못된 행위를 멀리하라는 뜻입니다.
또한 ‘사귀지 말라’(μὴ συναναμίγνυσθαι)는 것은 ‘친밀하게 교제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5장 9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고 말하는데 한글 번역으로 ‘사귀지 말라’는 표현은 같지만 고린도전서에서는 ‘출교’를 의미하지만 데살로니가후서에서는 출교보다는 약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왜냐하면 15절을 보면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사귀지 말라’는 말과 함께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고 말하는데, ‘부끄럽게 한다’는 것은 ‘수치를 당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그 사람과 ‘사귀지 않으면서’ 그 사람을 ‘부끄럽게’ 할 수 있고, ‘사귀지 않으면서’ ‘형제 같이 권면’하는 것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선 여기서 전제는 이들을 ‘원수’가 아니라 ‘형제’로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인데, 그래서 이들에게 하는 권면과 징계는 모두 죄를 회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도록 하려면 먼저 이들과의 ‘사귐’을 중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들과의 교제가 계속된다면 이들로부터 잘못된 영향을 받아서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는 성도들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고, 자신들의 문제와 잘못을 깨닫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부끄럽게’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어떻게 하면 이런 사람들을 부끄럽게 할 수 있을까요?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라는 말일까요? 여기서 바울이 말하려고 하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 이들이 잘못된 가르침으로 참견을 하더라도 끝까지 ‘선을 행하기를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들의 생각과 가르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원수를 갚는 것은 오히려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21절을 보면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하였는데, 가장 좋은 예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에게 원수를 갚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신적인 권능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면서 죽으셨습니다. 끝까지 십자가에서 선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을 스스로 부끄럽게 만드신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악과 맞서 싸우다가 스스로 악마처럼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인간 존재가 악과 죄에 대해 매우 취약하기 때문인데, 그래서 악과 싸우면서 악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악을 묵상하면서 악의 도구로 쓰임받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절에서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했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않게 하소서.
2. 불순종하는 사람과는 사귀지 말게 하소서.
3.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사람, 악한 사람을 선으로 부끄럽게 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