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3:1~2,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
데살로니가후서 3:1~2,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 말미에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사랑과 위로와 소망의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데살로니가후서 3장에는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오히려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있는데, 먼저 1절을 보면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라고 말합니다. 예전 개역한글판 성경에는 ‘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라고 번역하였는데, 이 번역과 비교해 볼 때 바뀐 것은 ‘종말로’가 ‘끝으로’라고 바뀌었고, ‘달음질하여’를 ‘퍼져 나가’로 바꾸었습니다. ‘종말로’를 ‘끝으로’로 바꾼 것은 잘된 번역이라고 생각되는데, 왜냐하면 ‘종말로’라는 표현은 자칫 ‘종말론’적인 언급으로 오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달음질하여’를 ‘퍼져 나간다’로 바꾼 것은 조금 의미 전달이 약해졌다는 생각이 드는데, 왜냐하면 ‘퍼져 나간다’는 말은 경주와 관련된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때때로 자신의 사도적 노력을 경주로 비유하곤 했는데,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 9장 24절을 보면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퍼져 나간다’는 것은 단순히 ‘퍼진다’는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복음이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사실 팬데믹 이후에 우리가 교회를 생각하면서 드려야 할 기도가 이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2019년 7월부터 미주 지역에 있는 한인교회를 대상으로 실태 조사의 결과, 2019년 3,514개에 달했던 한인교회가 2022년에는 2,798개로 1,022개나 줄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많은 교회가 코로나 기간 동안에 문을 닫았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문을 닫게 될 교회가 더 많이 생겨날 것으로 예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주의 말씀이 급속히 퍼져 나가기는커녕 오히려 축소되거나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의 말씀’이 다시금 부흥할 수 있도록 기도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주의 말씀이 다른 지역에도 급속히 전파될 뿐만 아니라 ‘영광스럽게 되’기를 기도해 달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영광스럽게’라는 것은 승리에 대한 묘사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이 전파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처럼 다른 지역에서도 복음 전파로 영광을 드러낼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첫 번째 기도와 두 번째 기도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최근에 복음 전파가 약화된 이유는 교회가 분쟁과 다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지 못한 결과이기 때문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지 못하기 때문에 복음 전파가 약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가 지난 주중에 총회 임원회를 다녀왔는데, 총회 임원회에서 다루었던 가장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가 ‘재판’과 관련된 일들이었습니다. 여러 지역에서 발생하는 재판과 분쟁, 그리고 교회의 분열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되었는데, 특히 교회의 지도자들이 서로 사회 법정에 고소하는 일이 많이 생겨나고 있고, 자기의 뜻대로 교회를 움직이려고 패거리를 만들어서 이전투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과연 이와같은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영광’을 받으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임원회 기간 동안 같은 방을 사용했던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정말 가슴아픈 이야기였는데, 장로로 피택 되었지만 주일 예배 참석이나 헌금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장로 임직식을 늦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분은 교회 카톡방에 목사님을 괴롭히는 글을 올리면서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어서 목사님이 신경성 위장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고, 또 이런 사람들 때문에 교회를 슬그머니 떠나는 사람들도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목회자를 힘들게 하는 일은 지금 뿐만 아니라 바울의 시대에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2절을 보면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라고 기도해 달라고 말하였는데, ‘부당하다’(ἀτόπων)는 단어의 어원은 ‘ἄτοπος’(átopos)입니다. 그리고 ‘A’는 not이고 ‘tópos’는 ‘place’를 뜻합니다. 그래서 ‘out of place, strange, perverse’라고 번역할 수 있고 한국말로는 ‘부당하다, 무리하게 하다, 삐딱하다’는 의미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악하다’(πονηρῶν)는 말은 ‘toilsome, bad’(번거로운, 나쁜)의 뜻입니다. 그래서 표준새번역에는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을 ‘심술궂고 악한 자들’로 번역하였는데, 한마디로 사도 바울의 목회를 삐딱하게 생각하면서 이런 저런 이유로 방해를 하거나 번거롭게 해서 일이 되지 않도록 하는 사람들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다음에 나오는 표현인데, 바울은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복음 전파와 목회를 방해하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신앙을 지닌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빈(Calvin)은 이 구절을 ‘신앙이 모든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번역하면서 대적자들이 겉으로는 경건의 흉내를 내지만 실제로는 신앙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핸드릭슨(Hendriksen)은 ‘믿음의 결여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복음 자체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취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이런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과는 일체의 타협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고, 또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도 이런 사람들의 방해와 잘못된 가르침에 굴복하지 말고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인 것일까요? 크게 두가지로 구분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유대인’들처럼 복음에 대하여 바른 믿음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바울이 복음을 전했을 때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방해하고 박해를 하였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바울이 말하려고 했던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은 오히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들이 겉으로는 ‘믿음’의 사람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바울의 목회와 선교를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주의 말씀이 중단되지 않고 급속히 전파될 수 있게 하소서.
2. 복음 증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우리 자신이 부당하고 악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4. 우리의 믿음이 복음에 부합한 믿음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