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3:10,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


데살로니가후서 3:10,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 

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말씀 묵상을 돕는 글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36절에서 게으르게 행하고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서 떠나라고 명령하였고, 반대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않고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주야로 일하였던 바울과 동역자들의 모습을 본받으라고 말했습니다.

 10절에는 계속해서 떠나야 할 사람에 대해 말하는데,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데살로니가후서 전체에서 바울이 말하려고 했던 가장 중요한 메세지를 담고 있는 핵심 구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단순히 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론적인 가르침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 신학에 대한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먼저 바울이 말하는 은 그저 일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일하다’(ἐργάζεσθαι)라는 동사 앞에 οθέλει라는 단어가 있는데 οὐ’not이고, ‘θέλει‘is willing’입니다. 그래서 일자리가 없어서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일할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일할 의지가 없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 기생하려는 사람들을 향해 경고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와같은 사람들에 대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였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부터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권고와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향해 아예 먹지도 말게 하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 강력하게 말했던 이유는 조금 전에 언급한 것처럼 에는 매우 중요한 창조의 원리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5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말합니다. 아직 땅을 ’(לַֽעֲבֹ֖ד) 사람이 없었다는 말은 창세기에서 인간의 노동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첫 번째 말씀인데, 이것은 인간의 존재가 하나님의 창조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2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에덴 동산’(גַּן־ בְעֵ֖דֶן)은 헬라어로는 파라데이소스인데 이것은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는 즐거움이 넘치는 정원, 공원을 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에덴을 만드시고 거기에 인간을 두신 이유는 창세기 215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앞서 창세기 25절에서 땅을 갈다는 단어가 15절에서는 경작하며로 번역하였는데 모두 עָבַד’(경작하다, 일구다)라는 단어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은 처음부터 일하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낙원의 삶을 누리게 하셨는데 낙원은 단순히 풍요와 쾌락을 즐기는 곳이 아니라 경작하고 일구는 노동을 통해 땀을 흘리고, 피조 세계에 이름을 부여하는 창조적인 노동의 삶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긍정적인 의미에서 시작된 , 노동이 부정적이고 피동적이고 숙명적인 , 노동으로 바뀌게 된 이유는 인간의 범죄와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타락하고 죄를 범한 후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되었는데, 그래서 창세기 319절을 보면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속한 거룩한 노동이 먹고 살기 위한 노동 혹은 어쩔 수 없이 땀을 흘리고 수고를 거듭해야 하는 고단한 노동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구원과 창조 질서를 회복한다는 말은 총체적인 의미가 있는데, 인간의 구원 뿐만 아니라 일(노동)의 본래적인 의미를 되찾는 것도 포함됩니다. 그래서 인간의 죄와 타락으로 인해 훼손된 노동의 본질까지도 회복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거룩하고 복된 일을 통해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면서 일하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 참된 구원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을 향해 먹지도 말게 하라고 말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를 거부하는 것과 같고 특별히 창세기 128절에서 인류에게 최초로 명령하신 지상 명령,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에 강력하게 훈계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의 많은 부분에는 일을 하지 않고 게으른 것을 악한 것이라고 말하는데, 예를 들어 잠언 66~11절을 보면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고 말합니다. 또한 마태복음 252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일하지 않고 땅에 묻어 두었던 한 달란트 맡은 자를 향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반대로 시편 1265, 6절을 보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 노동은 하나님의 창조 신앙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에게 맡겨진 에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을 교훈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인간은 일하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소서.

2. 하나님께서 선물로 허락하신 이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성실하고 열심히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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