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1:16~17,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디모데전서 1:16~17,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말씀 묵상을 돕는 글】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핍박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도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전하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맡겨주신 것이기 때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과는 확실하게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특히 바울은 스스로 ‘죄인 중에 괴수’(15절)라고 까지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죄인 중에 괴수와 같은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 이유를 16절을 보면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을 ‘긍휼’(ἠλεήθην)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앞서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기’(12절)셨다는 말과 비슷한 의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실력과 능력으로 사도가 된 것이 아니라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충성된 사람으로 여겨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셨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먼저’(πρώτῳ)는 순서상 ‘첫번째’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미래의 성도들 중에서 예수님의 오래 참으심의 첫번째 본보기가 되었는데, 특히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의 경우를 통해서 아무리 흉악한 죄인이라도 주를 믿으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본보기, 실례(example, NIV)’를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경험했던 바울은 곧이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17절을 보면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라고 찬송과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에 대하여 네가지로 표현하고 있는데, 먼저 ‘영원하신 왕’(Τῷ δὲ Βασιλεῖ τῶν αἰώνων)이라는 것은 ‘Now to the King eternal, NIV’, ‘To the King of the ages, ESV’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모든 시대와 세대의 왕’이라는 뜻으로 유대인들이 유대교의 예배 의식에서 많이 사용하는 친숙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은 자칭 위대하고 영원한 왕이라고 주장했던 로마의 황제와 대조적인 의미를 강조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썩지 아니하고’(ἀφθάρτῳ, immortal)라는 것은 피조물과 다른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데, 로마서 1장 23절을 보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고 말할 때도 사용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과 모든 피조 세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양과 존재가 변화되지만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와같은 생각은 시편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시편 103편 15~17절을 보면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보이지 아니하고’(ἀοράτῳ, invisible)는 하나님은 인간의 이해와 감각을 초월하여 계신 분임을 나타내는데, 하나님과 인간은 존재 지평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간에게 보여주실(계시) 때만 하나님에 대하여 알 수 있을 뿐인데, 히브리서 11장 27절을 보면 모세에 대해 말하면서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고, 볼 수 있는 방법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홀로 하나이신’(μόνῳ Θεῷ) 분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유일신’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숫자상으로 하나, 둘에서 ‘하나’라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신적인 존재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유일성’을 지닌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고 말씀하셨고, 에베소서 4장 6절을 보면 바울은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고 말하는데, 하나님을 한 분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유일하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와같은 하나님의 속성과 본질에 대하여 언급한 후에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라고 말하는데, ‘존귀’(τιμὴ)는 ‘price, honor’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최고의 가치가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고 ‘영광’(δόξα)은 ‘praise, honor, glory’라는 뜻으로 ‘최고의 영광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이고, ‘영원무궁하다’(εἰς τοὺς αἰῶνας τῶν αἰώνων)는 것은 ‘forever and ever’라는 뜻으로 ‘존귀와 영광’을 영원히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갑자기 이와같은 찬송과 감사를 표현하게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다름 아니라 바울이 죄인 중에 괴수와 같은 자신에게도 주를 믿어 영생을 얻는 긍휼함을 허락해 주셨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들으면서 벅차오르는 감격과 기쁨을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리려고 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함을 입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소서.
2. 우리의 죄와 연약함에 대하여 주님께서 오래 참으시고 계심을 깨닫게 하소서.
3. 영원하신 하나님, 불변하시는 하나님,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