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5:21~24, 주님 오실 때까지 흠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십시오.
데살로니가전서 5:21~24, 주님 오실 때까지 흠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십시오.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해 권면을 하고 있는데, 21절을 보면,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바로 앞에 나오는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20절)라는 권면과 연관시켜서 해석해야 하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초대 교회 당시에는 복음과 신학에 대한 정리가 진행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잘못된 가르침이 교회 안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예언의 은사는 모방하기가 쉬웠기 때문에 누가 참된 선지자인지 거짓 선지자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그래서 ‘범사에’에 헤아려 보라고 말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예언의 은사’들의 진위 여부를 모두 ‘헤아려’ 보라는 것인데, ‘헤아린다’(δοκιμάζετε)는 것은 동전이나 금속에 불순물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test’해서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기준으로 그 ‘예언’이 참된 예언인지 아니면 거짓된 예언인지를 가려낼 수 있는 것일까요? 가장 명백한 기준은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참된 성령의 은사와 거짓된 성경의 은사를 구분하는 기준은 ‘예수를 주(Lord)로 인정’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이유 때문에 바울은 교회 안에서 잘못된 가르침을 분별하도록 하기 위해서 고린도전서 14장 29절을 보면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라고 말하고, 고린도전서 12장 10절을 보면 성령의 은사 가운데 ‘영들 분별’하는 은사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언을 멸시하지’ 말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예언과 가르침에 빠지지 않도록 헤아리고 분별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날에는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잘못된 신학과 가르침이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예언과 가르침이 올바른 것인지를 분별하여 ‘좋은 것’을 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참된 예언과 잘못된 예언을 구분하여 ‘좋은 것을 취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22절을 보면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합니다. ‘모양’은 ‘외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종류’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모든 종류의 악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사실 이것은 간단치 않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악의 외형이나 악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클 경우를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포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은 미워하지만 악의 결과물은 남겨두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사무엘상 15장에서 사울이 아말렉을 공격하여 승리한 후에 아각 왕과 좋은 것들을 전리품으로 남겨두었다가 버림을 받은 경우처럼... 그래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많은 동전이라고 가짜 동전은 버리고 참된 것을 취하는 허가받은 환전상이 되라’는 말을 했는데, 진짜 동전과 가짜 동전을 구분하라는 것은 참된 예언을 구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많은 동전이라도 가짜 동전은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가짜 동전이 아깝다고 버리지 못한다면 더 큰 혼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3절과 24절은 3장 11절 이하에 나오는 첫 번째 간구에 이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두 번째 간구라고 할 수 있는데, 먼저 23절을 보면 바울은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여기서 크게 두가지 기도가 나오는데, 첫 번째 기도는 성도들이 ‘온전히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온전히’(ὁλοτελεῖς)라는 말은 신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여기에만 나오는데, ‘최종적이고 완전한’ 목표에 다다른 것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삶의 궁극적인 완성을 의미하는데, 그리스도인의 최종적인 목표가 ‘온전한 거룩함’에 이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간구는 ‘영과 혼과 몸이 흠 없게 보전’되는 것인데, 사실 여기서 ‘영(πνεῦμα)과 혼(ψυχὴ)과 몸(σῶμα)’이라는 표현 때문에 많은 혼란과 해석상의 어려움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인간 존재가 ‘삼분설’인지 ‘이분설’인지를 놓고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인간의 구성 요소가 삼분설이냐 이분설이냐가 아닙니다. 바울이 이와같은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당시 헬라적 사고 방식에 젖어 있던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눈높이 맞춰서 삼분법적은 표현을 사용한 것 뿐이었습니다. 오히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도들의 ‘전인격’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주님 오실 때까지 ‘육체적’인 거룩함 뿐만 아니라 ‘마음과 영혼의 거룩함’도 지켜낼 수 있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24절을 보면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미쁘시다’(πιστὸς)는 것은 ‘신실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부르신다’는 것은 현재분사형으로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인간들을 부르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계속해서 부르고 계시는데, 이렇게 성도들을 부르시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구원하시고 성화의 삶으로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신 것은 헛된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똑같은 의미에서 바울은 빌립보서 1장 6절에서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말하였습니다. 지금은 비록 희미하게 보이지만 신실하신 주님께서 반드시 구원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잘못된 가르침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하소서.
2. 여러 가지 모양의 악을 멀리하게 하소서.
3. 온전한 거룩함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과 인격을 거룩하게 지켜 주소서.
4. 신실하신 주님을 신뢰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