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2:3~4,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는 사람들

 데살로니가후서 2:3~4,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는 사람들

3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4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주의 날이 이미 도래하였다는 잘못된 가르침을 듣고 지나친 흥분에 빠지거나 두려움에 빠지는 성도들에게 주의 재림에 관한 바른 신학과 신앙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데살로니가후서를 기록하였다는 기록 목적과 의도를 분명히 말하였습니다.

 

이제 3절부터는 보다 구체적으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먼저 3절을 보면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라고 말합니다. ‘누가 어떻게 하여도라는 것은 2절에서 영으로나 말로나 편지로나라는 것처럼 어떤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미혹되지 말라는 것은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와같은 거짓된 가르침에 속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인데, ‘배교라는 것은 정치적, 군사적 반란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신앙에서 실족하는 경우가 아니라 집단적으로 하나님을 대항하는 악의 세력이 출현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요한일서 218절에서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고 말하는 것처럼 역사 속에서 사탄의 악한 일을 행하는 자들이 수없이 많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사람을 지칭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인물을 어떤 특정한 사람과 동일시하기 보다는 마지막 날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라고 볼 수 있는데, 특히 사람’(ἄνθρωπος)이라는 단어는 나타날 적그리스도가 사탄 자신이 아니라 사탄의 일을 수행하는 인간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법의 사람멸망의 아들과 동의어로 말하고 있는데, 아무리 흉악한 계획과 힘으로 성도를 핍박하면서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멸망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1712절에서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를 가리켜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실 때도 멸망의 아들과 같은 표현을 사용한 바 있습니다.

 

어쨌든 이와같은 바울의 주장은 바울의 주장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는데, 그래서 마태복음 2411절을 보면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라고 말씀하셨고, 마태복음 2423, 24절에서도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이와같은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아직 이와같은 징조들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주의 날이 이미 도래하였다는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나타난다는 동사는 부정과거 시제로 미래적 의미를 나타내는데 불법의 사람이 역사의 정해진 시간에 발생할 결정적인 사건과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4절을 보면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고 말합니다. ‘대적하는 자배반자라는 의미도 있는데, 종종 사탄을 지칭하는 표현이고, ‘신이라 불리는 모든 것은 이방신들 뿐만 아니라 하나님까지도 포함해서 모든 신적 존재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숭배함을 받는 것은 사도행전 1723절에서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고 말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종교적인 숭배의 대상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이와같은 표현들은 다니엘서 1136~39절에 나오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의 극에 달한 교만과 신격화 행위를 연상케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니라고 말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로마 황제 가이우스 갈리굴라(Caius Caligula)가 예루살렘에 자신을 숭배하는 동상을 세우려고 했던 시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일서 218절에서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라는 말처럼 적그리스도가 실제적으로 활동하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현상은 2000년 전에만 국한된 일이 아닙니다. 한국에서만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20여명이고, 재림 예수를 자처하는 사람은 50명이 넘습니다. 이외에도 하나님의 부인, 보혜사 성령, 엘리야나 다윗을 자처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1927유명화라는 사람이 예수가 자기 몸에 들어왔다고 주장하면서 강신극을 동반한 부흥회를 하였고, ‘이스라엘 수도원을 세운 김백문을 거쳐 통일교’(문선명), 전도관(박태선)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신과의 합일을 주장하는 신비주의적 신앙 행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베뢰아 아카데미(김기동), 장막성전(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은 유재열로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이만희로 이어졌고, JMS(기독교복음선교회)의 정명석, 안상홍증인회 등도 비슷한 부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와같은 모습은 이단 종파에서만 보여지는 특징이 아닙니다. 많은 교회에서 하나님 중심,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 생활을 강조하기 보다는 개 교회 중심을 강조하고, 그러다보니까 개 교회를 담당하는 목회자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이와같은 현상은 대단히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과 교통하고 교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신앙적 실천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모습이 지나치게 되면 자신을 신적 존재인 것처럼 착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하나님과의 만남과 교제가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자신이 연약한 인간 실존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어떤 방법으로도 잘못된 가르침에 속아 넘어가지 않게 하소서.

2. 성경에서 말씀하는 종말에 대한 가르침을 잘 분별하게 하소서.

3. 사람들의 경배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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