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1:1~2, 한결같음으로

데살로니가후서 1:1~2, 한결같음으로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오늘부터 데살로니가후서를 묵상하는데,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를 써서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데살로니가로부터 여러 가지 새로운 소식이 바울에게 도달했습니다. 그 소식들 중에는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를 보낸 후에 또 다른 편지가 있다는 소문도 있었고(거짓 교사들이 바울의 편지를 빙자하여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는 경우),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이러저러한 오해들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임박한 종말론을 주장하면서 예수님께서 당장에 오신다고 믿었기 때문에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손을 놓고 하늘만 쳐다보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소식을 접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에 어떤 사건들이 먼저 일어나야 하는지를 말하면서 그들의 오해를 풀어 주려고 하였고, 특히 재림을 기다린다는 핑계로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고 폐를 끼치는 게으른 자들을 책망하기 위해 또다른 편지(데살로니가후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후서 310절을 보면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는 경고를 말하게 된 것입니다.

 

어쨌든 복습하는 의미에서 다시 한번 사도 바울과 동역자들이 데살로니가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바울은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린 직후(이방인에 대한 복음 증거가 공식적으로 허락된)(바나바의 생질인) 마가 요한의 동행 문제로 바나바와 크게 다툰 후에 실라와 함께 선교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디모데에게 할례를 베푼 후에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하나님의 영이 허락하지 않음으로 인해) 드로아에서 바다를 건너 네압볼리 항구에 도착하였고, 다시 빌립보까지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빌립보에서 자주 장사 루디아의 집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귀신들린 여종을 치유하는 사건으로 감옥에 갇혔다가 기적적으로 풀려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 빌립보를 떠나서 데살로니가에 도착했는데,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의 회당에서 3주일에 걸쳐 성경을 강론하였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방해로 회당에서 나와서 야손의 집에서 모이게 되었는데, 이것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효시였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야손의 집으로 쳐들어와서 소동을 피우면서 사회적인 문제가 일어나게 되었고, 시의 행정관들은 야손 일행에게 보석금’(17:9)을 받고 풀어주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바울과 실라는 베레아로 가게 되었는데, 데살로니가에 있던 유대인들이 베레아까지 쫓아와서 방해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베레아에 남겨둔 채 혼자 아덴으로 내려갔고, 나중에 실라와 디모데가 아덴으로 내려와서 함께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다시 실라와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내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형편을 알아보도록 하였고, 자신은 고린도로 가서 실라와 디모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라와 디모데로부터 전해 들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바탕으로 데살로니가전서를 쓰게 되었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데살로니가후서를 써서 보내게 된 것입니다.

 

어쨌든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임박한 종말을 기다리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도록 하기 위해 편지를 썼는데, 먼저 1절을 보면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편지를 쓰는 저자와 편지를 받는 수신자가 나오는데, 편지를 쓰는 사람들은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인데 데살로니가전서를 묵상할 때도 함께 생각해 보았지만 바울의 선교 사역은 팀 사역이었습니다. 마치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던 것처럼 이들도 세 사람이 하나가 되어 선교 사역을 감당했기 때문에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공동 저자로 이름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와같은 팀 사역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의기투합을 해서 함께 사역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분열과 갈등을 겪는 일이 허다합니다. 물론 사도 바울도 마가 요한의 동행 문제로 바나바와 크게 다투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고린도전서 96절에서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라고 말하면서 바나바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는데, 이것은 바나바와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이고, 또 디모데후서 411절을 보면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다고 말하면서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의 원인이었던 마가를 재평가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바울은 처음에는 사람들과 불편한 관계로 시작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결국 나중에는 다시 관계를 회복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는 일이 단순히 개인의 탁월한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역자들과 함께 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신자를 보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라고 말하는데, 데살로니가전서 11절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하나님 우리 아버지라고 표현하는 점에만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편지를 쓰는 바울과 동역자들의 관계 뿐만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과도 한결같은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2절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말합니다. 그냥 은혜와 평강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당시 초대 교회의 전형적인 인사법이었습니다. 이와같은 인사는 다른 서신들(1:7, 고전 16:23, 4:18, 살후 3:18)에도 자주 사용되었던 보편적인 인사였는데,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카리스)평강’(샬롬, 에이레네)을 기원할 때 평강은 유대인들의 일상적인 인사였고, ‘은혜는 헬라인 그리스도인들의 인사말이었기 때문에 당시 초대 교회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특히 한결같음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시간이 흘러도 아무런 성장이나 변화, 발전을 하지 못하는 것을 구태의연하도 말합니다. 하지만 한결같음은 가만히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지켜내는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좋은 관계를 지켜내는 것이고, 끝까지 서로를 향해 축복의 인사를 계속하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은 이런 면에서 한결같음이 매우 중요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일에 함께 동역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구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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