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1:7~8, 안식을 누리는 자와 형벌을 받는 자

데살로니가후서 1:7~8, 안식을 누리는 자와 형벌을 받는 자 

7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말씀 묵상을 돕는 글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지금 당하는 박해와 환난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이기 때문에 인내와 믿음으로 잘 견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이와같은 고난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5)을 받는 기회라고까지 말하였습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7절에서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라고 말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지금 극심한 박해와 환난을 당하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도 환난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환난을 당하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과 바울의 동역자들 모두에게 안식으로 갚으신다고 말합니다. ‘안식’(ἄνεσιν)은 팽팽하게 당겨진 활을 원래의 상태로 느슨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바울과 성도들은 믿음을 지키는 과정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그 고난이 헛된 것이 아니라 결국은 참된 안식과 평안을 얻는 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요즘 Norman Wirzba가 쓴 [Living the Sabbath]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조의 과정에서 창조의 최종적인 목표가 안식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23절을 보면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주일에 평안히 안식을 한 후에 힘을 얻어서 일주일을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우리가 일주일 동안 살아가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고 고통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가오는 안식을 기대하면서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목표와 완성은 주님과 함께 누리는 안식이기 때문에 거기에 초점을 맞추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목회자들이 주일에 예배드리는 을 하느라 안식을 누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성도들과 목회자 모두 안식을 누려야 하는데, 먼저 목회자는 목회자의 일을 중단할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쉬지 못하는 이유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자신이 없으면 교회가 중단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대단히 교만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께서 직접 인도하시는 공동체이지 목회자에 의해 좌우되는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도들도 세상적인 일을 중단하고 안식을 누릴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생업과 일을 감당하는 청지기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업과 일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제, 안식을 향해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식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향해서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하는데, 만약 을 하느라 안식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방향과 목적을 잃어버린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마치 누가복음 1218절에서 어리석은 부자가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고 말하지만 20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어리석은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본문에서 바울은 성도들이 지금 환난을 당하고 있지만 최종적인 안식을 누리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라고 말합니다.

 

또한 7절 하반절과 8절을 보면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묘사인데, 예수님께서 천사들과 함께 오신다고 말하는 것은 초대 교회 당시에 예수님을 일종의 천사라고 생각하는 오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사와 같은 분이 아니라 천사들을 다스리는 주권자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또한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라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는 대심판의 날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하늘은 단순히 문자적으로 공중(air)’이나 하늘’(sky)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heaven) 혹은 하나님의 보좌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나타나신다’(ἀποκαλύψει)는 것은 계시, 폭로, 드러냄을 뜻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감추어졌던 모든 비밀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때가 되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8)을 내리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당시 이방인들을 지칭하기도 하는데, ‘모른다’(μεδόσιν)는 말은 알지 못한다는 뜻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감사하지 않는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않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을 연결하는 접속사가 καὶ’인데 크게 두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καὶ’등위접속사로서 사용하면 그리고라고 번역해서 AB를 동등한 위치에서 연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καὶ’’(namely)이라는 부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앞에 나오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으로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ὑπακούουσιν)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복종한다는 말은 복종한다는 뜻 이외에 듣는다, 대답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듣지 않는 사람, 반응하지 않는 사람, 복음을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기억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는 사람들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에게는 결국 형벌을 주신다고 말하는데, 사실 형벌’(ἐκδίκησιν)이라는 단어는 ‘ek’‘díkē’(justice, judge)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복수’(vengeance), 혹은 입증’(vindication)이라는 뜻인데, 하나님을 모르고,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은 그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형벌을 받았다는 것을 입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앞에서 박해와 환난을 당하면서도 인내와 믿음으로 견디는 성도들에게 안식을 주신다고 말하는 것과 대조되는 표현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하나님과 함께 안식을 누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하나님을 모르는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3.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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