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1:5~6,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기다립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5~6,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기다립니다.

 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6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앞서 바울과 동역자들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서로 사랑함에 있어서 풍성하여졌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도 인내와 믿음을 지키고 있다고 칭찬하였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성도들 중에는 믿음으로 인하여 성도들이 환난과 핍박을 당하는 반면, 악한 박해자들은 번영을 누리는 현실에 대하여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시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시행될 것인지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의구심은 이미 구약에서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 던졌던 질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하박국 12~4절을 보면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악인이 의인을 핍박하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같은 질문에 대해 5절부터 10절까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먼저 5절을 보면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심판의 표라고 할 때 분명한 표식, 증거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핍박을 받으면서도 인내와 믿음을 지키는 것은 장차 있을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서 영광을 받는 증거가 되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을 극심한 핍박 속에서 지켜 주신다는 사실에 대한 보증이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와같은 박해와 환난을 주신 이유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받게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박해와 환난을 인내하고 견디는 것 자체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되는 것은 인간의 행위나 공의로 되는 것이 아니라 에베소서 28, 9절에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당하는 박해와 환난은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려고 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현재 시제로 과거의 고난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성도들에게는 고난이 뒤따르는데,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29절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고난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베드로전서 221절을 보면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다고 말하고,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바울과 동역자들도 많은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이처럼 데살로니가 성도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도 고난을 받으셨고, 사도들도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고난은 죄로 인한 형벌과는 구분되는 것인데, 베드로전서 220절을 보면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고 말합니다. 성도들이 받는 고난은 죄로 인한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고난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이라면 그것은 베드로전서 17절에서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받는 것처럼 보이고 악인들이 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6절을 보면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신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갚으시고라는 말은 합당한 것을 돌려 준다는 뜻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39절에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라고 할 때 보답할까로 번역했는데, 본문에서처럼 부정적인 의미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을 보여주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는 자들의 죄를 간과하지 않고 반드시 형벌하고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레온 모리스(Leon Morris)라는 신학자는 이 진리는 어떤 철학적 견해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하나님의 의로운 속성에 뿌리 박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30절을 보면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을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같은 사실을 깊이 신뢰하는 성도들은 핍박하는 자들을 향해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살전 5:15)할 뿐만 아니라 베드로전서 39절을 보면 심지어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신뢰하는 성도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것은 악을 묵상하여 악을 닮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자칫 고난과 고통을 당하는 성도들이 악을 묵상하면서 오히려 악을 닮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난 중에도 악을 묵상하지 말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그 고난은 고난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는 것임을 기억하면서 인내와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의로운 고난을 견디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고난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끝까지 복을 기원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4.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신뢰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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