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1:3~4, 자라나는 믿음과 풍성한 사랑, 그리고 인내
데살로니가후서 1:3~4, 자라나는 믿음과 풍성한 사랑, 그리고 인내
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4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데살로니가후서 1장 1, 2절에는 편지를 쓰고 있는 발신자와 수신자가 나오고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바울의 인사말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3절부터 본격적으로 편지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는데, 먼저 3절을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라고 말합니다.
‘우리’라는 일인칭 복수형은 바울이 실루아노와 디모데의 이름을 발신자로 거론한 것이 형식적인 언급이었거나 체면치레로 말한 것이 아니라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 함께 동역했던 실질적인 동역자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이들은 가장 먼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책망하기 전에 먼저 칭찬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을 보면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특히 ‘믿음이 더욱 자라고’라는 표현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더욱 자란다’는 것은 ‘풍성하게 성장하다, 한계점에 이를 때까지 성장하다’라는 뜻입니다. 사실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를 쓸 때만 해도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디모데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3장 5절을 보면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라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데살로니가전서 3장 10절을 보면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데살로니가전서를 쓸 때만 해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상태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고, 또 부족한 믿음을 보충하기 위해서 기도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후서를 쓸 때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더욱 자라’나서 한계점에 도달할 정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데살로니가전서 3장 12절을 보면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라는 기도가 나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 뿐만 아니라 성도들 가운데 사랑이 넘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풍성함’은 ‘풍부하다, 증가하다’는 뜻으로 사랑에 대해 사용될 때는 충만함에 이르도록 점점 더하여진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믿음과 사랑이 자라났고 풍성해졌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믿음과 사랑은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믿음은 사랑의 시작이고 동시에 사랑의 근원입니다. 또한 믿음의 결과가 사랑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완전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당연’히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4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겪었던 고난과 핍박이 바울과 동역자들이 떠난 후에도 지속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박해’는 일반적인 시련으로 인한 고통을 나타내고, ‘환난’은 신앙 때문에 받는 고통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견디고 있다’는 말은 박해와 환난이 과거에 있었던 일이 아니라 지금 현재까지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박해와 환난을 피하기 위해서 신앙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박해와 환난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믿음으로 인하여 박해를 받았고, 투옥되기도 하였고, 내적인 고민과 슬픔 또는 걱정과 두려움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해 애매한 고난을 당할 때도 있었겠지만,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벧전 1:7) 얻는 길이라고 생각하였고 고난을 통해 믿음을 연단시키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박해와 환난’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보다는 ‘인내와 믿음으로’ 견딜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인내’는 견딜 수 없는 정도의 무게를 끝까지 참아내는 자세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당할 때 수동적인 자세로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용맹스러운 군인처럼 강건하게 서서 버티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인내’는 ‘믿음’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인내와 믿음’을 한 쌍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이와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인내하면서 믿음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여러 교회’는 고린도와 아가야 지방에 있는 교회를 나타내는데,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 그리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보여준 인내와 믿음은 다른 많은 성도들에게 귀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바울과 동역자들이 ‘한결같음, 신실함’으로 함께 사역했고,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신앙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한결같음’은 제자리에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씩 조금씩 믿음의 진보를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믿음이 자라나고, 사랑이 풍성해지는 것이 ‘한결같은’ 신앙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우리의 믿음이 날마다 자라나게 하소서.
2.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하여지게 하소서.
3. 박해와 환난 속에서도 인내와 믿음을 잃지 않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