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1:11~12, 예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소서
데살로니가후서 1:11~12, 예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소서.
11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12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데살로니가후서 1장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박해와 환난 중에서 인내와 믿음으로 견디는 성도들에게는 ‘안식’으로 갚으시고,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영광’을 받게 되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은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라고 말했습니다.
11절부터는 1장을 마무리하면서 기도하는 내용인데, 바울과 동역자들은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 날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기 때문’인데, 데살로니가 성도들 중에는 재림의 날이 가까이 왔기 때문에 손을 놓고 하늘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구원’을 받은 사람은 이상 아무런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구원파’에 있는데, 이들은 언제 구원을 받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몇 년 몇 월 몇 시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은 기도할 필요도 없고, 회개와 성화의 삶을 살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정말 심각한 이단이 아닐 수 없는데, 하지만 바울과 동역자들은 오히려 구원받은 성도들이라도 먼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기를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주의 날’에 있을 영광의 완성에 이를 때까지 ‘여기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4절에서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여기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과 동역자들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기를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선을 기뻐한다’는 것은 ‘선을 행하려는 뜻과 의향, 선에 대한 강력한 욕구’를 나타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9절에서도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말했는데, 다른 어떤 즐거움보다도 ‘선을 행하는 즐거움’을 갖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욕구와 욕망은 벗어버려야 하지만 ‘선에 대한 욕구’만은 끝까지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역사’는 ‘믿음의 행동’을 뜻합니다. 믿음은 결코 정지하거나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행동을 동반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2장 22절에도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고 말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Leon Morris라는 신학자는 ‘신앙은 하나님의 축복을 획득하고 그의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활동하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무리 인간이 선을 행하려는 욕구와 믿음의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을 완성하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주님의 능력으로 완성’하게 해 달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이 믿음의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을 완성하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기도는 12절에 나오는데,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예수의 이름’은 단순히 ‘이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위엄과 주권과 능력을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는데,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이름이 영광을 받으신다’, ‘이름이 높임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같은 의미에서 십계명에서도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 주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게 할 수 있을까요? 레위기 19장 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거룩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1장 15절에서도,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앞서 10절에서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기도하는 것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는데, 10절에는 주님의 재림의 때에 성도들로부터 받으시는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었는데 12절은 지금 현재 성도들이 살아가는 삶을 통해서 ‘예수의 이름’이 영광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성도들이 드릴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찬송은 입술로 드리는 찬송도 중요하겠지만 ‘삶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는’ 찬송이 더욱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성도들이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면 로마서 2장 24절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게 된다고 말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지 못하는 일이 됩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에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삶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는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선을 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믿음의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우리의 삶에서 거룩함이 드러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오실 때까지 살아야 하는 마땅한 성도의 삶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하소서.
2. 모든 선을 기뻐하게 하소서.
3. 믿음의 역사를 이루게 하소서.
4. 주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는 삶과 행실을 살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