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1~3, 믿음은, 믿음으로

히브리서 11:1~3, 믿음은, 믿음으로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오늘부터 히브리서 11장을 묵상하게 되는데, 고린도전서 13장을 사랑장’, 고린도후서 15장을 부활장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믿음에 관해 중요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인데, 히브리서 기자가 여기서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와 배경을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히브리서 기자는 선지자와 예수님, 천사와 예수님, 모세와 예수님, 옛 언약과 새 언약, 구약의 제사 제도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등을 비교하면서 예수님의 우위성에 대해 말했습니다. 특히 10장에는 구약의 율법에 따른 제사가 불완전하고 임시적인 제사이기 때문에 이제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 새로운 시대는 율법적인 제사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예배드리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39절을 보면,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라고 말하였습니다.

 먼저 1절을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실상’(ὑπόστασις)‘under’‘to stand’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기초, 실체, 확증, 객관적 실체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실상은 사람의 생각이나 감각에 의해 좌우되는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완전히 독립된 객관적인 실체입니다. 결국 믿음은 그리스도인들이 객관적 실체를 확신하는 것이고,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에 대해 대단히 중요한 정의인데, 일반적으로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확신으로 끝까지 믿음을 지키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믿음자기 확신 혹은 낙관주의는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나에게 소망을 확신하게 하고, 내가 희망하는 것을 보증해 준다는 의미에서 나의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믿음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신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궁극적인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희망은 과거나 현재의 모습과는 상관없이 전적으로 외부에서 주어지기 때문에 현실의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 좌절하거나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고난 속에 있는 사람들을 궁극적으로 구원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결국 믿음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믿음의 근거를 나의 확신, 나의 경험, 나의 지식, 나의 의지라고 하면, 확신이 무너지면 믿음도 무너지고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지식이 나타나면 우리는 무기력한 신앙인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가 한계에 이르게 되면 신앙을 포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근거그 분이신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나아갈 수 있었고, 13절을 보면 심지어 약속을 받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따라 죽을 수도 있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합니다. ‘보인다’(βλεπομένων)는 말은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감각적으로 알 수 있는 것, 보이는 것을 의미하는데,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는 것들’(πραγμάτων)사실, 행위, 사건, 업무등의 인간의 모든 활동을 나타내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보이지 않는 것들은 아직 인간의 현실 속에 나타나지 않은 사건들, 예를 들면 종말론적 미래에 나타날 사건과 같은 일들을 의미합니다. 이런 일들은 현재에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이와같은 것들에 대한 증거인데, ‘증거’(ἔλεγχος)는 법률적인 용어로 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객관적인 증거, 증명을 의미합니다. 결국 믿음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아직 나타나지 않은 종말론적인 사건에 대한 확실한 증거, 증명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세상은 앎(지식)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절을 보면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ἐμαρτυρήθησαν)를 얻었느니라고 말합니다. ‘선진들조상들’, 즉 구약에 나오는 신앙의 위인들을 지칭합니다. 흔히 구약은 율법이고 신약은 복음이라고 말하고, 또 구약은 제사이고 신약은 믿음이라고 쉽게 구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구약의 신앙인들에게도 신앙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제사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4절부터 히브리서 기자는 이와같은 사실을 구약에 나오는 믿음의 선조들을 하나씩 예로 들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3절을 보면, ‘믿음(Πίστει)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합니다. 3절부터 31절까지 믿음’(Πίστει)이라는 단어가 가장 첫머리에 등장하는데, 구약의 신앙인들 뿐만 아니라 모든 신앙인들의 가장 첫머리에는 믿음이라는 단어가 있어야 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쨌든 믿음으로 안다는 말은 참된 진리에 대한 인식이 믿음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특히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나타내는데, 이와같은 창조에 대한 지식도 믿음으로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이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믿음으로 깨닫게 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은 유대인들이 가시적인 우주를 의미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고, ‘나타난 것은 헬라인들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창조는 혼돈 상태에서 창조자가 이데아나 원형을 사용하여 질서를 부여하거나, 창조 이전에 존재했던 어떤 물질을 사용해서 우주가 생성된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히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창조의 신비를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확실한 목표와 로드맵(road map)을 손에 쥐고 확신있게 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를 불러내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스왈드 체임버스(Oswald Chambers)믿음은 우리가 이끌려 가게 될 곳을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분을 사랑하고 아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의 삶으로 인도하시는 그 분을 사랑하고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믿음의 근거가 하나님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2.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3. 하나님의 창조를 믿음으로 고백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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