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역사 5】 박해받는 기독교 2, 히브리서 11:32~40


 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역사 5박해받는 기독교 2, 히브리서 11:32~40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바락삼손입다다윗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오늘은 [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역사]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어제부터 박해받는 기독교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는데, 로마 황제들이 기독교를 적대시하고 박해를 하게 된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기존 체제를 잠식하고 로마의 가치를 위협한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정치적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일도 많이 있었습니다. 로마에서 일어난 박해는 네로 황제로부터 시작해서 도미티아누스,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막시미누스, 데키우스, 발레리아누스, 디오클레티아누스까지 크게 10대 박해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오늘은 몇가지 특징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려고 하는데, 2차 박해는 AD 95년경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도미티아누스는 자신을 ‘Dominus et Deus’ 곧 주(lord)와 신(god)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로마 시민들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조상(彫像) 앞에서 향을 피우고 가이사는 주님이시다(Caesar Kurios)”라고 외쳐야 했습니다. 어제도 생각해 본 것처럼 이와같은 황제 숭배는 사실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통치 전략의 일환으로 시행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황제 숭배는 신앙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라고 고백하거나 신으로 여겨 제사를 지내거나 예배하거나 절대 충성 맹세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예수 신앙과 배치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를 단호하게 거부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피해 지하로 들어가 카타콤을 만들어서 지내기 시작하였는데,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171, 6절에서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 큰 음녀라고 로마를 지칭하였습니다.

 

그 이후로도 사도 요한의 제자이자 안디옥의 감독이었던 이그나티우스가 세 번째 박해(트라야누스 황제)에서 순교하였고, 서머나의 감독이었던 폴리캅은 네 번째 박해(하드리아누스 황제)에서 순교(155)하였습니다. 특히 폴리캅은 재판관이 한 번만 그리스도를 저주하면 살려주겠다고 회유하였지만 나는 여든 여섯 해 동안 그분을 섬겼지만 그분은 한번도 나를 저버린 적이 없소. 그런데 어떻게 내가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저주할 수 있겠소?”라고 말하면서 순교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박해(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때는 저스틴, 포티누스, 블랜디나가 순교하였고, 여섯 번째 박해(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에서는 그리스도교에로의 개종이 금지되었고, 일곱 번째 박해(막시미누스 황제)에서는 기독교 성직자를 처형하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여덟 번째 박해(데키우스 황제)는 처음으로 전국적인 박해가 일어났는데 황제는 로마의 옛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로마의 옛 종교를 수복하려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특히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을 처벌하기보다는 배교자가 생겨나도록 하였는데, 그래서 로마의 이방 신들에게 예배한 자에게만 증명서를 발급하였습니다. 이때 그리스도교 성도들은 로마의 신들에게 숭배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증명서를 돈을 주고 구입하는 사람도 있었고, 신앙을 지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실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는 2년 정도에 걸친 짧은 박해였지만 교회에 남긴 후유증은 매우 컸습니다. 왜냐하면 이때 신앙을 저버린 사람들을 다시 교회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로 교회 안에서 큰 내분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황제가 물러나게 되었고 후계자였던 갈리에누스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대한 박해 명령을 철회하여서 약 40년 동안 평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그리스도인의 숫자와 교회가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많은 예배당들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아홉 번째 박해(아우렐리아누스 황제)에서는 이전처럼 잔혹한 박해는 아니었지만 재산이 압수되고 기독교의 집회가 금지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열 번째 박해(디오클레티아누스-갈레리우스 황제)는 가장 비극적이고 잔인한 최악의 박해였는데, 황제는 내란과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입영을 기피하거나 부대를 이탈하는 사람들을 처형하였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은 네 지역으로 분할 통치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지역의 통치자였던 총독 갈레리우스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게 병사들이 기독교 신앙을 거부하도록 강요하였고 이를 거부한 상당수의 병사들이 처형을 당했습니다. 이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교신에 대한 희생제물이 되기도 하였는데, 특히 혹독한 박해를 지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배교와 순교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로마 행정 당국은 신앙을 포기하는 증표로 성경을 제출하도록 하였는데 목숨을 구하기 위해 성서를 로마 군인들에게 넘겨준 목회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결국 8년 동안 지속된 박해로 인해 약 2천여명의 순교자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는 극심한 혼란기였는데, 총독 갈레리우스가 황제가 중병에 걸린 것을 계기로 최고 권력자가 되었지만 여러 가지 정치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는 계속되었는데 신체를 절단하고 채석장에서 강제 노역을 시켰습니다. 하지만 생명력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을 저버리지 않고 채석장과 노역장에서 함께 모여 자신들의 주이며 구원자인 예수께 예배를 드리면서 신앙을 지켜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을 극심하게 박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약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황제의 지나친 박해를 혐오하는 분위기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결국 병으로 쓰러진 황제는 비로소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를 종식시키는 칙령을 발표하고 공공질서에 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신앙과 집회를 허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황제 갈레리우스가 죽은 후에 제국은 다시 4개의 지역으로 분할되었는데, 서부 지역의 통치자가 콘스탄티누스는 군사를 이끌고 로마로 진격하여 라틴어를 사용하는 서부 지역 전체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관용적이었는데, 밀라노 인근 지역의 통치자 루시니우스를 만나 통일 협상을 하였는데, 협상 목록에는 그 지역에서 그리스도인 탄압을 중지하고 교회와 묘지와 재산을 돌려준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밀라노 칙령(313)인데, 콘스탄티누스는 전쟁 중에 꿈 속에서 기독교를 상징하는 표지를 병사들의 방패에 부착하라는 계시를 받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헬라어 두 글자 ‘Px’를 군기에 표시하면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해서 콘스탄티누스가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태양신을 숭배하였고, 그리스도인들을 공인한 이유도 다분히 정략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 수가 엄청나게 증가하고, 민심이 잔인한 통치자를 떠나 그리스도인들을 동정하는 방향으로 기울자 이를 역이용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박해가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잘 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과거사 청산 과제와 권징에 관한 문제로 분열을 겪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박해에 굴복하여 배교를 택한 교회의 지도자들과 끝까지 신앙을 지킨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이 깊어지면 결국 초대 교회 안에서 내분이 발생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도나투스 논쟁을 다루면서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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